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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MZ는 참지않지” 韓게임 향한 마차·트럭 시위, 행동주의 유저가 분노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프리티 더비' 국내 이용자들이 보낸 시위 마차가 지난달 29일 오전 카카오게임즈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인근 도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프리티 더비' 국내 이용자들이 보낸 시위 마차가 지난달 29일 오전 카카오게임즈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인근 도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판 달린 트럭들, 급기야 마차까지. 게이머들의 이색 시위에 판교가 긴장하고 있다. 게임사에 직접 시위 트럭과 마차를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 유저(user·이용자)’들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 게임이 마음에 안들면 조용히 그만두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만을 표출하는데 그쳤던 과거와는 다르다. 한국 게임사들의 유저 기만과 지속된 불통에 게이머들의 행동 양식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뿔난 게이머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슨 일이야

카카오게임즈가 국내에 서비스하는 인기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개발사 일본 사이게임즈)’ 유저들은 지난달 29일 본사가 있는 판교 일대에서 ‘마차 시위’를 진행했다. 일본 현지와의 차별 대우, 과도한 과금 정책, 소통 미흡 등으로 쌓였던 불만을 표출한 것. 우마무스메가 경마 모티브의 게임인 점에 착안해 마차를 택했다. 사흘 뒤 지난 1일 열린 3차 시위에선 국회와 증권사들이 모인 서울 여의도 일대에 항의 트럭을 돌렸다. 결국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는 지난 3일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소통 방식 ▶일본과 재화 지급 차이 ▶늦은 공지 ▶오역·오타·알람 기능 등 4가지 사안에 개선을 약속했다.

지난달 5일 리니지 2M 개발진이 'BJ 프로모션' 논란에 사과하는 모습. 사진 엔씨소프트 유튜브 캡처

지난달 5일 리니지 2M 개발진이 'BJ 프로모션' 논란에 사과하는 모습. 사진 엔씨소프트 유튜브 캡처

앞서 엔씨소프트도 지난달 ‘분노의 트럭’을 받았다. 회사가 일부 게임 BJ들에게 수억 원에 달하는 유료 재화를 몰래 지급했다는 이른바 ‘BJ 프로모션’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다. 논란이 커지자 리니지 2M 개발진은 사과 방송을 했다.

게임업계는 이같은 집단행동을 ‘유저 세대교체’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기존 게이머들 요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아 게임사들이 불만을 뭉갤 수 있었다”며 “이젠 (게임사와 유저 모두) 시위의 파괴력을 확인했기 때문에 의견을 표출하는 다양한 방식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에도 말야

게임업계에 트럭 시위가 본격화한 건 지난해 1월부터다. 당시 넷마블은 모바일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FGO)’의 신년맞이 현금 보상 이벤트를 긴급 종료했다. 유저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주했고, 결국 3주에 걸친 본사 앞 트럭 시위로 번졌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게임사들이 매출 증진을 위해 뽑기 아이템 확률을 조작했다는 의혹)’ 논란이 업계 전반을 뒤흔들었을 때도 넥슨을 비롯한 다수 게임사들이 시위 트럭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넷마블과 넥슨은 ‘유저와의 긴밀한 소통’을 게임 운영의 최우선 순위로 놓는 등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게 왜 중요해

익명 커뮤니티에서 모인 여론이 긍·부정을 막론하고 기업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초통령’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한국서만 성인 게임이 된다는 소식에 네이버 팬카페 ‘우마공(우리들의 마인크래프트 공간)’이 발벗고 공론화에 나선 사례도 그중 하나다. 이 사건은 10년 넘게 갈라파고스 규제란 비판을 받아온 ‘셧다운제’ 폐지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복수의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확실히 수년 전보다 유저들 요구 수준이 적극적이고 행동주의적으로 변했다”며 “흐름이 바뀐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마비노기 유저들이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넥슨 본사가 있는 판교 일대와 여의도 국회 인근으로 보낸 시위 버스. 이후 넥슨은 게임별 소통창구를 개선하는 등 소통에 힘써 민심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사진 디씨인사이드 마비노기 갤러리

지난해 3월 마비노기 유저들이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넥슨 본사가 있는 판교 일대와 여의도 국회 인근으로 보낸 시위 버스. 이후 넥슨은 게임별 소통창구를 개선하는 등 소통에 힘써 민심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사진 디씨인사이드 마비노기 갤러리

① 똑똑해진 소비자: 이렇게 모인 유저들, 영리하고 효율적이다. 시위 진행을 위한 모금과 리스크에 대비한 사전 논의까지 일사천리. 사측의 빠른 대응을 끌어내기 위해 언론에 어필할 방법, 주주들의 주식 매도를 유도할 방법 등을 고민하고 시위 트럭엔 대문짝만하게 CEO 이름을 건다. 이색 시위로 재미 요소를 챙겨가며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번 카카오게임즈 마차 시위를 주최한 유저들은 사전에 ‘동물 학대’ 논란을 고려해 전문 훈련사를 동행시키고 말이 지치지 않도록 날씨까지 체크했다. 준비 당시 커뮤니티에선 “말이 사과나 각설탕처럼 단맛 나는 간식을 좋아한다니 준비해두자”, “남은 모금액은 말 관련 단체에 기부하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당근과 채찍’에도 능수능란하다.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기업엔 칭찬과 ‘돈쭐’을 아끼지 않는다. 앞서 미숙한 운영으로 비판받았던 넷마블 FGO는 오는 7일 유저들로부터 400만원어치의 ‘커피 트럭’을 선물받게 됐다. 지난 1년여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도 지난해 유저 비판을 수용해 매출의 17%를 차지하던 유료 아이템을 포기했다. 발표 직후 유저들은 일주일 만에 3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으로 화답했다.

지난해 5월 하이브 본사가 위치한 용산역 인근을 돌고 있는 팬덤의 시위 트럭(왼쪽)과 2017년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SM 관계자 강연 요약본. 사진 각 커뮤니티

지난해 5월 하이브 본사가 위치한 용산역 인근을 돌고 있는 팬덤의 시위 트럭(왼쪽)과 2017년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SM 관계자 강연 요약본. 사진 각 커뮤니티

②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 게임업계 유저 행동주의의 바탕엔 ‘캐릭터에 쏟는 애정’이 있다. 아티스트 권익을 위해서라면 트럭 시위, 메일 총공(소속사에 동일한 요구사항이 담긴 메일을 계속 보내는 것) 등을 불사하는 국내 엔터업계 소비자들과 닮아가는 모양새. 이들 팬덤은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회사 관계자 발언을 SNS에 실시간 공유하는 방식으로까지 진화했다. 행동주의는 ‘참지 않는’ 젊은 소비자들을 주축으로 퍼져나가는 중.

③ 대세 된 유저 행동주의: 시위나 고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MZ세대 유저들이 핵심 소비자로 부상하면서 SNS나 커뮤니티를 통한 단체 행동은 글로벌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중심으로 비디오 게임업체 게임스탑 주가가 폭등한 사건이 대표적. 당시 온라인에서 뭉친 일반 개미투자자들은 대형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맞서 주식을 사들이며, 이른바 ‘밈 주식’ 열풍을 불렀다.

앞으로는

이처럼 유저 행동주의는 비단 게임·엔터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SNS, 커뮤니티, 블라인드(앱) 등 익명 문화에 익숙한 ‘여론 주도층’ 세대의 목소리는 여러 업계로 계속 퍼져나갈 전망.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소비자의 진화’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수동적인 구매자에서 생산·서비스 단계부터 개입하는 구매자로의 움직임이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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