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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하나銀만 쟁점? 론스타 ‘HSBC 무산 6조’ 통째 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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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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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 승소, 4.6% 패소.

수치만 놓고 보면 크게 이긴 것 같지만, 일부 패소로 외국 사모펀드에 물어줘야 할 돈이 자그마치 3000여억원이다. 전례가 없는 큰 액수다. 2012년부터 약 10년을 끌어온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사건 판정 결과 얘기다. 이 같은 판정은 지난달 31일 주무부처였던 법무부를 통해 공개됐다.

한국 정부가 진 부분은 단 하나의 쟁점.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금융위원회의 승인 지연으로 매각 가격이 떨어진 데 대해 론스타와 각각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금융위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금융당국의 권한 내 행위가 아니므로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서도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 판결 책임으로 50%의 과실상계를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이 때문에 야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핵심 쟁점에서 패소했으니 다 진 것’이라는 부정 평가가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6조원 소송 가액은 터무니 없이 부풀려져 있다. 실제 쟁점은 하나금융 매각 대금이 깎인 부분으로 사실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청구액은 7700억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법무법인 피터앤 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법무법인 피터앤 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2년부터 론스타 사건의 한국 정부 측 대리인단을 이끈 김갑유(60·사법연수원 17기)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변호사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론스타는 1976년 협정을 근거로 2008년 HSBC와 매각 무산(60억1800만달러·당시 환율 약 6조원)을 통째 배상받으려고 노력했다”며 중재판정이 나오기까지 비화를 공개했다.

1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갑유 변호사는 일각의 비판을 “일방적인 주장이자 결과론적인 얘기”라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다뤄진 쟁점은 무수히 많고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졌다”며 “하나은행 매각가 인하도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보다 더 치열하게 대립했던 쟁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중재 과정에서 국내에서 제기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한국 책임을 주장한 론스타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며 “정부가 여러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다시는 이러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가장 큰 핵심 쟁점에서 진 거 아닌가.
“하나금융 매각 인하 부분은 금융 쟁점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 다만, 어느 게 더 중요하고 더 핵심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쟁점이 중요했다. 사실 론스타 측이 가장 세게 주장했던 쟁점 중 하나는 관할 쟁점이었다.”
관할 쟁점이 왜 중요했나.
“론스타가 배상을 청구한 것 중 가장 비중이 큰 게 홍콩상하이은행(HSBC) 매각 무산 부분이었다. 2008년 발생한 HSBC 매각 무산의 한국 정부 책임을 인정받으려면 1976년 체결된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BIT)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구하거나, 2011년 체결된 BIT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도 ‘일련의 투자 행위’로써 인정받는 게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정부 책임이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배상해야 할 금액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정부 측도 방어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부 측 방어 전략은 뭐였나.
“금융 분야는 2011년 BIT에만 명시돼 있다. 76년 BIT에는 산업 분야만 명시돼 있는데, 여기에 금융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다툼이 컸다. 정부는 76년 BIT는 금융 분야에 대한 투자를 보호하는 걸 포함하지 않고 있고, 2011년 BIT 관련해서도 협정 이전의 투자에 대해선 보호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HSBC 매각 무산과 관련한 관할이 전부 인정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관할 쟁점이 해소되면서 금융 분야 중 HSBC 관련 쟁점 역시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관할 쟁점은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부당한 과세를 주장하며 청구한 조세 쟁점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판정부는 “일부 과세처분은 2011년 BIT 이전에 있었던 것이므로 관할을 불인정한다”며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김 변호사는 조세 쟁점과 관련해 “2011년 이후 부동산, 지분 판매, 배당 수익 등에 대한 4가지 과세는 물론 관할이 인정되지 않은 그 이전 3가지 과세에 대해서도 판정부가 정부의 자의적 과세가 없다고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또 “하나금융 관련 쟁점만 놓고 봐도 가격 인하 쟁점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다”라며 ▶중간 배당과 연말 배당을 받지 못하도록 정부의 압력이 있었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지분 10%를 우선 매입하려고 했는데 이 역시 정부가 압력을 행사해 막았다는 론스타 측의 주장이 전부 기각됐다는 점을 짚었다. 다만, 매각 가격 인하 과정에서 정부의 압력이 일부 인정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중재판정부의 법리 적용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2019년 하나금융과 론스타의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 결정문이 일부 패소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도 있다.(※이 결정문에는 매각 가격 삭감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었다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증언이 담겼다.)
“그 사건은 한국 정부가 당사자도 아니고, BIT가 쟁점도 아니었다. 매각 거래 당시 하나금융이 사기 행위를 했느냐가 쟁점이었다. 금융법 규제가 주요 이슈도 아니었고, 한국 정부가 증거를 제출하거나 증언을 할 기회도 없었다. 더구나 론스타 ISDS 사건에서 당시 상황과 관련한 리뷰(review)가 충분히 이뤄졌다. 그런데도 그 결정문을 증거로 제출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뿐 아니라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사건도 유죄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가정적인 질문이라 답하기 어렵다. 그 사건도 유죄였다면 정부 입장에선 좋은 자료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외국자본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해서 들어온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투자자 자격이 100% 사라진다고 볼 수도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무려 10년간 대리인단을 이끈 소회는.
“아직 취소 신청 등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35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사건이다. 대한민국을 대리한다는 게 영광이기도 하면서도 그만큼 부담도 컸고 여론의 압력도 엄청 많았다. 어떤 사건보다 애착이 강했다. 결과적으로는 참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처가 잘 됐다는 점을 확인받아 반갑다.”
론스타 사건이 준 교훈이 있다면.
“론스타 사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막대한 차익을 거뒀고, 나갈 때 막지도 않았는데 국제투자분쟁(ISD)을 청구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에서 정부의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테스트를 받은 셈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압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의사결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사건이다. 수많은 압력을 전부 수용하다보면 자칫 정부의 책임이란 위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일각에선 론스타를 계기로 외국과 협정에 포함된 ISD 조항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꾸로 한국 투자자가 외국에 나가서 보호받는 걸 생각하면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한테만 유리한 것을 찾기보다 우리도 외국과 똑같이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을 원해야 한다.”
국제통상 분쟁 분야에서 한국 정부의 역량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론스타 사건은 물론 다른 ISD 사건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고 본다. 한국 정부와 법원이 국제적인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명성을 쌓은 계기가 됐다. 다만, 한국 공직사회의 특성상 정부 측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 왔다는 점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 한 명의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관여한다. 담당 공직자들이 자주 바뀐 게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데 큰 지장을 준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국제통상 분쟁 분야에 관여하는 공직자들의 전문성이 충분히 축적되도록 인원의 연속성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이 지원되면 좋겠다.”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론스타 사건 정부 측 대리인인 김갑유 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피터앤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터뷰 말미에 최근 야권이 의혹을 제기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론스타 사건 증언 내용에 관해 슬쩍 물었다. 야권에선 한 총리가 2014년 ICSID에 론스타에게 유리한 진술을 제출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 총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중재 절차의 구체적인 서면이나 진술 등에 대해선 비밀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한 총리는 대한민국을 위한 증인으로 한국에 유리한 증언진술서를 내셨고,  론스타에 유리한 진술을 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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