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우리 회사 원조상품…스타킹 대명사 2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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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에선 나일론 스타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35년 듀폰이 개발한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은 비단이나 면으로 만든 제품보다 신축성이 뛰어났다. 우리나라에는 1948년 처음 소개됐다. 수입상들이 나일론 스타킹을 들여와 양장을 즐겨 입던 일부 부유층을 상대로 팔았다. 본격적으로 국내 생산, 판매된 것은 1958년이다. 당시 출시된 제품은 남영염직의 '무궁화 스타킹'. 남영염직은 훗날 비비안으로 사명을 바꾸고 우리나라 스타킹 제조산업을 이끌었다. 특히 70년대 미니스커트 열풍이 불면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스타킹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스타킹에도 약점이 있었다. 한번 늘어나면 탄력이 떨어졌다. 조금 신다 보면 줄줄 흘러내리고 주름이 잡혀 맵시가 나지 않아 여러 번 신을 수 없었다. 비비안은 83년 이런 문제를 해결한 '고탄력 스타킹'(사진)을 내놨다. 나일론보다 탄성이 좋은 스판덱스를 소재의 카바링(covering)실로 만든 제품이다. 종아리.허벅지에 착 달라붙어 다리를 더 날씬해 보이게 했다. 비비안은 당시로선 큰 액수인 400억원을 들여 이탈리설비를 들여와 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소비자들이 나일론 제품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고탄력 스타킹 가격은 1500원으로 기존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비비안은 잡지와 TV광고를 통해 고탄력 스타킹을 신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노출시켰고 각종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고탄력 스타킹의 판매량은 90년 600만, 91년 1500만, 92년 3100만 켤레로 매년 큰 폭으로 불어났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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