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서두르는 싱가포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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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홍콩=전택원 특파원】싱가포르 리광야오(이광요)총리가 지난해 10월 천명했던 은퇴시한이 이달말로 임박함에 따라 후계체제의 등장과 이후의 정국방향에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31년간에 걸쳐 여덟 차례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끌어온 이광요의 비중을 고려할 때 「이광요 없는 싱가포르」의 장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80년 1인당 GNP 1만5백 달러라는 풍요를 달성한 이광요는 싱가포르의 성립은 물론 경영, 심지어 소유형태에 있어서 조차 「싱가포르 주식회사 회장」으로 불릴 만큼 특이한 통치스타일을 구사해왔다.
이광요의 이력과 싱가포르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크게 2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1단계는 이광요가 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설, 59년 영 연방내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초대총리로 취임하고 지금의 말레이시아와 말레이연방을 추진하던 시기에 해당된다.

<31년간 8회 연임>
제2단계는 말레이연방 가입이 좌절된 65년부터 이광요의 총리직 은퇴까지.
인구 2백70만명의 작은 섬을 영토로 한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의 합류가 좌절 (당시 이광요는 협상결렬을 공표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당한 실의를 딛고 국가건설에 나서 25년간 연평균 9%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시기다.
『정부가 이룬 실적을 보고 평가해 달라』며 기량을 과시해온 이광요는 이같은 실적 위에 장기 집권의 토대를 쌓았다.
이제 「이광요 없는 싱가포르」, 또는 「총리가 아닌 이광요 시대」라는 제3단계의 막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후계체제가 얼마만큼 싱가포르를 이끌어 나갈지, 공식 직위가 없는 이광요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일지, 과연 이광요는 정치에서 완전히 은퇴할 것인지에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이광요의 제1후계자는 제1부총리와 국방장관을 겸하고 있는 우쭤둥(오작동). 그 다음은 이의 장남 리쉬안룽(이현룡) 준장이다.
38세인 이현룡은 영국유학·군장성·의원·각료 경력을 두루 거치면서 부자권력세습의 과정을 밟아왔다.
이런 점에서 13년간 이의 각료로 일해온 오작동은 이현룡을 위해 「자리 데워 주기」역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비서장직은 유임>
오의 권력인수는 이광요가 누린 총리직보다 더욱 권력의 핵심인 PAP의 비서장직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서 반쪽 인수라고 할 수 있다.
오는 『그 (이광요)의 완전한 정계은퇴는 싱가포르의 손실이다. 따라서 나는 그에게 비서장에 유임하도록 건의해왔다. 이는 PAP의 창시자이기도 한 이광요에 대한 나의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유교주의적 의리를 강조하는 점에서 오는 이광요의 충실한 후계자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석졸업생인 이광요는 서구식 민주주의보다 평소 「화인(중국인)의 가치관」을 즐겨 내세워왔다.
최근 그의 다섯번째 중국방문을 전후해 홍콩을 방문했던 이는 기자회견석상에서 특유한 그의 정치관을 과시했다.
『중국의 전제정치는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일부 중국인이 이에 대항하려 한데서 발생한 것이 북경 천안문사태였다.
유교적 가치관이란 「권위에의 복종」이며 그 반대는 서구적 퇴폐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논리에 의한 천안문사태의 분석이다.
『싱가포르 인은 모두 집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 교육·의료의 수준도 높다.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과 번영이 있는 싱가포르 인에게 민주란 불필요하며 서구식 민주주의 없이도 싱가포르는 자기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보 전진을 겨냥>
싱가포르를 방문한 외국기자의 질문에 응해서는 안되며 휴지를 버리거나 화장실 사용을 잘못(단속하는 방법이 중요하지만)해도 가차없이 벌금을 가하는 것이나 1당 장기독재체제가 지속되는 것은 이광요의 정치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치관과 능력에 회의를 느끼지 않는 이광요의 가부외적인 통치는 수많은 정치탄압이 점철되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88년 한해만도 톱클래스 계층의 25%인 4천7백 가구의 전문인력이 해외로 이주한 것도 정치적 질식상태가 한 이유인 것으로 지적된다.
최근 들어 이광요는 김일성·카스트로와 함께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 세계의 민주화물결과는 아랑곳없이 국가성립이래 집권을 계속하는 사례로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광요가 스스로 총리직을 내놓는 것은 신설되는 대통령직을 겨냥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현재 의회에서 간선으로 선출되는 의전상의 직위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직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 직선으로 선출하는 법안이 지난 8월 의회에 상정되어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같은 대통령직에 이광요는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자신을 위해 대통령직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키 위해 첫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듯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개혁요구 미지수>
이 경우 제1세대 건국자의독재를 용인해온 싱가포르 국민들이 새로운 제도아래서의 장기집권체제를 다시 제2세대에까지 연장하려 할지 미지수로 남는다. 민주 없는 안락에 민주까지 요구할지는 싱가포르 국민자신들이 결정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한 기업인은 단기간내의 변혁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광요가 정치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개혁체제가 등장하려면 적어도 10∼1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인 (이광요와 오작동을 포함, 싱가포르 인의 77%는 중국인이다)의 기질과 역사·문화적인 특징에서 볼 때 투표라는 방식으로 집권당이나 지도자를 바꾼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광요의 주장대로 아직까지 서구적 선거로 정권을 출범시킨 전례가 없는 「화인의 전통」이 싱가포르에서 당장 바꾸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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