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이다. 뿌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흔히 조선시대 복식을 전통한복이라 여긴다. 개화기 이후 유입된 서양 문물, 국권 침탈 이후 일제의 의복 통제 등으로 일상에선 점차 사라졌다. 1960~70년대에는 개량한복이 보급됐으나 한식당 유니폼으로 굳어지면서 패션으로는 매력을 잃었다.
그랬던 한복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은 듯하다. 블랙핑크의 신곡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가 공개 1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억회를 돌파했다. 멤버들이 입은 한복 의상 역시 전 세계에 소개됐다.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스타가 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건 흔한 모습이다. 이들의 의상은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전통한복은 아니다.
지난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복박람회 ‘한복상점’이 열렸다. 70여 한복 업체가 내놓은 상품은 전통한복이라기보다 한복에서 모티브만 딴 경우가 많았다. 풍성한 치마선, 한복을 연상시키는 소재와 문양, 고름이나 깃 등 한복 구성 요소의 일부만 차용하는 식이다. 디자이너들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한복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패션이어야 생명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가 청와대에서 한혜진 등 톱모델을 데리고 화보를 찍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정치권에선 모델이 입은 의상은 한복이 아닌 것 같다, 국빈을 맞이하던 영빈관에 누워서 촬영하다니 국격을 떨어뜨렸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힘쓴 고 이영희(1936~2018) 디자이너가 파리 프레타 포르테 쇼에 참가해 저고리 없이 치마만 두른 한복을 선보여 ‘바람의 옷’이라 찬사받았던 게 무려 30년 전 일이다.
보그는 청와대보다 더 유서 깊은 경복궁 등 4대 궁에서도 화보를 촬영한 바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2018년 비욘세와 Jay-Z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로 내주고, 이를 투어 코스로 만들어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덕에 그해 루브르 방문객이 25% 증가한 100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가디언). 화보와 패션의 완성도에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건으로 한복 부흥이나 문화재 활용 정책 자체가 퇴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