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정신” 수사로 내분 봉합/청와대 「수습대좌」 어떻게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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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파 명분ㆍ실리 살린 「짜깁기」/YS 내각제외엔 당권등 소득 적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6일 청와대 단독대좌로 만신창이가 됐던 집권여당의 내분사태는 일단 마무리됐다.
노­김 회담의 합의발표문은 ▲국민이 반대하는 내각제개헌은 하지 않기로 하고 ▲대표최고위원 중심의 당운영 ▲당기강 문란행위 엄중문책 ▲민주개혁입법의 조속처리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계파간 갈등의 근본원인이 됐던 내각제개헌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국 전체의 흐름을 무리하게 끌고가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으며 김 대표가 노린 가장 큰 목표는 충족된 셈이다.
그러나 13대 국회는 물론 14대에도 개헌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는 김 대표의 해석에 민정­공화계는 즉각 이의를 달고 청와대측도 과도한 해석임을 시사하고 있다.
합의문에는 김 대표가 주장하던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는…』이란 표현에서 「야당」이 삭제됐으며 따라서 상황이 변하면 「국민여론을 묻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내각책임제를 명시한 당강령 1조를 개정하자는 김 대표의 요구는 수용되지 못했다.
다만 두 사람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내각제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 최소한 13대에서는 조기개헌 시도가 없어진 것 만큼은 확실해졌다.
김 대표가 내각제 반대와 더불어 요구했던 당권문제에서는 눈에 띄는 소득을 얻지 못했다.
얼핏 당을 대표중심체제로 운영하기로 함으로써 김 대표가 당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대통령이 권한을 폭넓게 위임할 수 있는 길을 튼 것 같아 보이나 민주계가 요구했던 당헌이나 당규개정은 하지 않음으로써 구두보장 이상의 선을 넘지 못했다.
당기강 확립에 관해서도 합의문은 강한 어조로 앞으로 발생하는 문란행위를 겨냥한 미래형으로 돼있어 김 대표에 대한 지금까지의 음해세력에 대한 김 대표의 문책요구와 사조직 정비요구가 먹혀들었는지 분명치 않다.
전체적으로 봐 합의문은 수사적 용어로 짜깁기 돼있어 이해를 달리하는 구체적 사안이 발생하면 계파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이번 「수습대좌」의 핵심은 김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이 『대통령과 나(김 대표)의 신뢰문제』이며 따라서 앞으로 당운영의 묘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되어버렸다.
노­김 회동이 민자당내 민정ㆍ민주ㆍ공화 3계파 모두에게 결정적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명분과 실리를 절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분당은 곧 공멸』이라는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민주계가 분당을 결행할 경우 명분은 얻을 수 있지만 민자ㆍ평민에 이은 제3당으로 전락할 것이며 이미 4당체제하에서 제3당으로서의 설움과 한계를 실감했던 그들로서는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 대표의 대권의 꿈은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도 한계로 작용한 것 같다.
임기 후반을 맞는 노 대통령으로서도 김 대표와 민주계가 분당해 평민당과 공조체제를 유지,정부 여당을 공격할 경우 안정적 정국운영과 통치기반에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임이 분명하고 정치도의적으로도 비난을 받을 것임을 우려한 것이다.
어쨌든 김 대표는 이번 파동으로 내각제개헌 추진중단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10여 일간씩 당을 마비시키며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데 대한 보상으론 불충분할 뿐 아니라 김 대표는 원칙과 행동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김 대표는 합의문외에도 「공개되지 않은 약속」이 있는 것처럼 풍기고 있으나 민정ㆍ공화계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노 대통령과 김 대표를 비롯한 당지도부와 민자당은 정치력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국민들의 정치 불신만 증폭시켰다.
이제 내각제 중단으로 대권경쟁은 본격화되게 됐다. 결국 이번사태로 노출된 계파간의 깊은 감정의 골과 김 대표에 대한 민정계 중진의원 및 공화계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 같다.
때문에 비록 이번 회동에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공멸의 위기의식이 임시변통의 봉합조치를 했다하더라도 정기국회가 끝난 후나 내년 2∼3월의 지자제선거 등 현안이 대두하면 또 대권을 노린 한바탕 혈투가 불가피할 것 같다.<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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