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체벌」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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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사의 체벌은 백해 무익한 구시대의 유물인가. 교육상 불가피한 「사랑의 매」인가. 최근 대법원이 체벌 교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림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체벌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체벌은 일종의 폭력이자 교육포기 선언과도 같은 것으로 그릇된 인간관계 형성의 폐해만 야기 시킨다고 보는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효과적으로 조정되고 통제되는 체벌은 훌륭한 교육수단이 된다고 보고 있다. 87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로는 교사의 85%, 학부모의 74.4%, 학생의 66.1%가 체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최근 들어서는 체벌 반대론이 확산되는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체벌에 대한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찬성>열악한 교육환경선 효과적 방법|동기 순수하고 학생이 수용해야
가르친다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과 같은 것이다.
화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과정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그리거나 한 곡의 음악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획일적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으며 교육환경과 교육대상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식으로 되어야 한다.
최근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체벌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지난달 30일 대구 B국교 김모 교사(25·여)의 학생체벌에 따른 대법원의 「유죄」판결 때문이다.
과연 학생체벌은 옳지 못한 것이며 교사는 앞으로 피소될 위험이 있다해서 「사랑의 매」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
체벌은 그 역사도 길고 형태도 다양하다. 아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체벌도 있었던 것 같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도 체벌은 교육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유럽의 전통적인 학교와 이에 영향을 받은 뉴질랜드 등의 학교에서는 각국마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현재도 체벌이 행해지고 있다.
동양에서도 체벌은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으며 유교사회의 서당에서 종아리를 때리면서 천자문을 가르친 것은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20여 년간 일선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오면서 체벌은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며 현재와 같은 열악한 교육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점을 절감한다.
다만 체벌이 교육의 수단으로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첫째, 체벌의 동기는 순수해야 한다. 즉 집단(학급·학년·학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 체벌자 개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교사와 학생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학생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
셋째, 체벌의 시간과 장소가 적절해야 한다.
넷째, 체벌의 정도는 학생의 과실과 비례해야 하고 그의 정신적·육체적 발달단계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체벌은 반드시 그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외로와 격려를 잊지 말아야한다.
이처럼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운영되는 경우 체벌은 교육의 좋은 수단으로 학생의 인격 형성과 학력향상을 기하며 사제간의 사람과 정을 두텁게 한다.
만일 「사랑의 매」를 때렸는데도 그 동기는 고려되지 않고 결과에 대해 책임만 지게 된다면 교사들은 체벌의 필요성은 절감하되 문책이 두려워 이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교육활동 위축, 교권 침해 등으로 이어져 결국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미국 등 일부 서양국가들의 교육 방법만을 옳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며 입시지옥도 없는 안정된 사회와 풍족한 교육여건을 갖추고 있다.
완벽한 시설 속에 한 학급 학생이 20여명인 그들의 교육이론과 방법을 어찌 여과 없이 우리의 교육현장에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
「사랑의 매」는 그 동기가 순수하고 절차상 하자가 없다면 법리적 해석에 앞서 교육적 판단에 맡겨져야 할 문제라 본다. <한국교총 파견연구원·장호원고 교사>

<반대>"교육" 이름으로 고통 주는 건 폭력|맞은 학생은 반항심 생겨 역기능
교육은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스럽게 변화시키려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는 상과 벌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상과 벌도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인격을 존중해 실시되어야 하고 오늘날 민주주의사회의 기본원리인 인간의 자율적 능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상과 벌은 「물질적·신체적」표현에 의한 것보다는 「상징적·언어적」 표현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또 일방적인 복종강요, 명령적 지시, 부모와 교사중심의 것보다는 자율성 존중, 상호작용의 이해, 아동 중심의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체벌은 나쁜 특징만을 갖추고 있는 벌의 방법이다.
첫째, 체벌은 「아프다」고 하는 신체적 고통을 학생들이 느끼도록 함으로써 교사가 원하는 행동을 강제하려는 방법이다. 자유와 해방, 고통이 없는 생활을 하려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이상인데 교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그러한 고통을 주는 것은 인권 침해요, 비인간적인 것이다. 우리는 최근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군대 조직내의 기합과 구타를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불법적인 것이라고 매도한 바 있다. 체벌도 신체적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는 이와 별 차이가 없다.
둘째, 체벌은 부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수반하는데 이것은 교육적으로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체벌을 받는 학생 치고 분노·반항·모욕감·수치·보복의 심리 등을 느끼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 생기면 교사와 학교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지고, 따라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대도가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이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을 원하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지지 없이 교사가 교육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 또는 청소년기에 한번 형성된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적 반응은 한평생 동안 교사·학교·부모·사회의 지도자·사회체제 등 권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나 상황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셋째, 체벌은 신체적 손상을 수반한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겠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예기치 않은 결과를 빚기 쉽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심리적 고통을 당하게 되고(몇 년 전에는 체벌한 교사가 고통으로 참회의 글을 쓰고 자살한 일도 있었음) 학부모의 항의, 형사처벌 등 빠져 나오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넷째, 체벌을 하는 이유를 보면 대개 학업 성적 부진, 교사에 대한 반항 등인데 그 어느 이유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상과 같이 신체적 고통으로 행동을 강제하는 체벌은 비인간적·비민주적이며 자율적 행동 능력과 책임감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한다.
체벌은 「사랑의 매」로 표현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크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 「매를 안대면 아이를 버린다」는 것은 옛말이고 지금은 매도 아끼고 아이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 학생의 지도는 상징적·언어적 이상과 벌에 의하여, 그리고 상담기술 등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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