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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열 17위 건국이래 최대 합동안장…공중파는 외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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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한 김유신 지사.  중국 산서성 태원지구에서 지하공작 중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한 김찬원 지사. 중국 산서성 운성에서 공작활동 중 체포돼 순국한 이해순 지사….

광복 이후 77년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했던 광복군 선열 17위의 유해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17명의 독립운동가 합동 안장은 건국 이후 최대 규모다.〈중앙일보 6월 28일자 16면〉

나라 잃은 20~30대 청년이었던 이들 광복군은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산화하거나 비밀공작 활동 중 체포돼 순국했다. 광복군 동지들이 유해를 수습해 국내로 봉환했지만 마땅한 후손도 없어 합장한지 55년째, 드디어 국립묘지에 영면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선열 17위 합동 봉송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선열 17위 합동 봉송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전엔 유해가 임시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봉송식이 열렸다. 앞서 지난 11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의 광복군 합동묘역에서 유해를 수습하는 등 이장 절차를 시작한 지 3일 만이다. 이후 서울현충원에선 이틀간 분향소를 열고 국민 추모 기간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유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오직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7위 선열을 한명씩 거명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갔던 영웅들을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안팎에선 이번 안장식을 두고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빨리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67년 수유리 합동묘역을 조성했던 한국광복군동지회의 후신인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가 정부에 이장을 제안한 건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26일이었다.

제77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한국광복군 선열 17위의 영현을 모신 차량들이 도착하고 있다. 뉴스1

제77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한국광복군 선열 17위의 영현을 모신 차량들이 도착하고 있다. 뉴스1

당초 국가보훈처 내에선 상징성이 높은 77주년 광복절에 맞춰 이장을 성사하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수유리 합동묘역에 안치된 유해의 실태를 확인한 적이 없고, 17위 중 한 분인 한휘 지사의 경우 국립묘지 안장에 필요한 서훈이 없어 합동 이장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국립묘지로 모시는 걸 더는 늦출 수는 없는 만큼 이번엔 정부가 나서서 한 지사의 서훈 심사 등 각종 행정 절차를 조기에 매듭지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봉송식에서 한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후손이 없는 한 지사를 대신해 이형진 광복군기념사업회장에게 전달했다.

항일투쟁 중 전사, 고문 등 사망 

한 지사를 포함한 광복군 선열들은 순국 당시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았던 청년이었다. 중국에서 항일 투쟁 중 전사하거나 적후(敵後) 공작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숨지거나 처형 당한 경우가 많았다.

유해들은 광복군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과 아들 지달수 지사(광복군 2지대 간부) 등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입국하면서 함께 돌아왔다. 수유리 합동묘역이 조성되기 전까진 안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서울 조계사에 유해를 모셨다. 수유리 합동묘역엔 마땅한 후손 없이 국내에서 별세한 광복군 네 분도 함께 묻혔다.

제77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한국광복군 선열 17위가 도착해 안장식에 앞서 충혼당으로 봉송되고 있다. 뉴스1

제77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한국광복군 선열 17위가 도착해 안장식에 앞서 충혼당으로 봉송되고 있다. 뉴스1

보훈처와 광복군기념사업회는 안장식을 앞두고 후손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 결과 백정현 지사의 조카 백공수씨, 이도순 지사의 외손 김대진씨, 이한기 지사의 종손 이세훈씨를 이날 행사에 초청할 수 있었다.

광복군 17위 유해는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현충원을 출발했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17대의 영현 봉송 차량이 차례대로 대전현충원에 들어선 건 오후 1시 40분쯤이었다.

유해들은 대전현충원 7묘역에 조성된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역’에 개별 안장됐다. 이번 합동 안장으로 대전현충원 내 광복군 선열은 360위로 늘었다.

공영 방송은 중계 없어

공중파 방송국은 이번 봉송식과 안장식을 중계하지 않았다. 관영 방송인 KTV가 생중계하고 YTN, 연합뉴스TV 등 보도 채널이 주요 행사를 실시간 방영했다.

이를 놓고 지난해 광복절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안장식과 대비된다는 지적도 있다. KBS는 지난해 광복절 당일 밤 9시 ‘황금시간대’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한 홍 장군 유해의 서울공항 귀환식을 생중계했다. 사흘 뒤 대전현충원 안장식 때는 공중파 3사 모두 중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윤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군 17위 봉송식 시간에 KBS1은 ‘TV비평 시청자데스크’란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안장식이 거행될 때는 '영상앨범 산'(재방송)과 '팔도밥상'이란 프로그램을 틀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데 매우 중요한 광복군의 대규모 합동 안장식을 공영방송이 전하지 않은 건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77년 만에 현충원 안장된 한국광복군 선열 17위 

① 김유신(1991년, 애국장) : 1943년 2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② 김찬원(1991년, 애국장) : 1946년, 중국 산서성 태원지구에서 지하공작 중 일본군에 체포, 순국
③ 백정현(1991년, 애국장) : 1944년 4월, 중국 북경감옥에서 탈옥 시도, 실패 후 총살 순국
④ 이해순(1991년, 애국장) : 1945년 8월, 중국 산서성 운성에서 공작활동 중 체포, 순국
⑤ 현이평(1995년, 애국장) : 1941년 1월, 중국에서 한국인의 민족의식 고취 등 활동 중 피살
⑥ 김순근(1990년, 애족장) : 1945년 2월, 일본군에 체포·억류 중 비밀 보전을 위해 자결 순국
⑦ 김성률(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적 후방에서 공작 중 전사
⑧ 김운백(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⑨ 문학준(1991년, 애족장) : 1943년 8월, 중국 하남성 수무현에서 전사
⑩ 안일용(1991년, 애족장) : 1944년 9월, 중국 하남성 수무현에서 순국
⑪ 전일묵(1991년, 애족장) : 1945년 8월, 초모공작 및 항일운동 전개 중 일본군에 체포, 순국
⑫ 정상섭(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⑬ 한  휘(2022년, 애족장 예정) :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추정)
⑭ 이한기(1990년, 애족장) : 1949년 10월 5일 호림부대 소속으로 작전 중 전사
⑮ 이도순(1990년, 애족장) : 1969년 11월 28일, 서울 자택에서 작고
⑯ 동방석(1990년, 애족장) : 1971년 1월 20일, 서울 자택에서 작고
⑰ 조대균(1990년, 애족장) : 사망일자 및 사망장소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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