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딛고 행복 그렸다…짱구 뺨치는 '꼬마 니콜라'의 비밀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8.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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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니콜라' 캐릭터 탄생 50주년을 맞아 2009년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열린 전시회. 로이터=연합뉴스

'꼬마 니콜라' 캐릭터 탄생 50주년을 맞아 2009년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열린 전시회. 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에 짱구 녀석이 있다면 유럽엔 꼬마 니콜라가 있죠. ‘짱구는 못말려’(원제 ‘크레용 신짱‘)만큼이나 세계적 인기를 끈 악동 캐릭터를 만들어낸 삽화가, 장 자크 상페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별세했습니다. 90세. 국내에도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 등 다양한 시리즈가 출간되어 큰 사랑을 받았죠. 기상천외한 장난을 끊임없이 쳐서 선생님과 부모님을 골탕먹이고 축구와 카우보이를 동경하는 아홉살 남자아이, 니콜라. 이 시리즈의 인기는 상페 특유의 오밀조밀하고도 위트 가득한 삽화 덕이 컸습니다. 세계 40여개 국에서 출간되어 150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합니다.

니콜라와 달리 상페 본인은 어린 시절 장난을 칠 여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가난 때문인데요. 유년기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본인의 유년기에 대해선 오랜 기간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80대에 접어들어서야 몇몇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괴로움을 예쁘게 포장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극복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죠. 2018년의 한 인터뷰에선 “니콜라 이야기는 내가 어린 시절 견뎌야 했던 비극을 반추하며, 다행히 잘 살아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꼬마 니콜라는 상페 본인이 꿈꾸고 소망했던 유년기를 상징할 겁니다.

장 자크 상페의 작업실. AFP=연합뉴스

장 자크 상페의 작업실. AFP=연합뉴스

그의 어린 시절의 불행은 가정 폭력과 빈곤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채 다른 가정에 맡겨졌고,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AFP통신은 그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니 내 뿌리,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며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생모가 그를 다시 찾아 키우기 시작했지만 가난과 폭력은 더 심해졌고, 그는 10대 초반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듭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꿈은 언감생심이었죠. 14살이 되던 해 나이를 속이고 자원 입대를 합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와 2016년 인터뷰에서 “당시의 나를 받아주는 곳 중 숙식이 제공되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은 그와 맞지 않았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틈틈이 그려왔던 그림을 파리의 신문사며 잡지사에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작가 르네 고시니를 만나 1959년 의기투합해 ’꼬마 니콜라‘ 시리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시리즈가 잘 된 건 아니었는지, 그는 생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40대 넘어서까지 작은 다락방에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표지를 맡으면서 안정적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50세를 목전에 두고서야 가정을 제대로 꾸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쓸쓸한 면모는 『좀머씨 이야기』 삽화에 묻어나옵니다.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장 자크 상페가 그린 표지 중 하나. [the New Yorker]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장 자크 상페가 그린 표지 중 하나. [the New Yorker]

괴로운 유년 시절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강연에서 “캐릭터 중에 색소폰을 부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왜 색소폰이죠?”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야, 그 아이가 플룻을 불 줄은 모르거든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가디언은 “능청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전했죠.

그를 구원한 건 화가로서의 재능이었을까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단언하곤 했습니다. “중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게 그의 단골 멘트였습니다. 한 인터뷰에선 “마감을 지키기 위해 30일 정도를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씻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은 평화로웠다고 합니다. 부인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뒀다고 AFP통신은 전했습니다.

유독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들의 별세 소식이 많았던 한 주였습니다. 팝의 여왕 올리비아 뉴턴 존(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3063), 패션계를 그야말로 주름잡았던 이세이 미야케(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3176)에 이어 장 자크 상페까지-. 고인(故人)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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