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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직원 정규직 만들고, 철로 보수는 외주 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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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OO역 구내식당 미운영 알림’.

서울의 한 지하철역사 직원 전용 구내식당은 지난 5월 중 11일 동안 식사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 식당 직원 6명 가운데 한 명은 그만두고 한 명은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다른 지하철역 구내식당 상당수도 일정 기간 문을 닫거나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할 때가 많다.

서울 지하철 구내식당 직원은 2018년 서울교통공사(공사) 소속 일반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협력·계약업체 소속이었다. 공사는 일반직 전환 후 조리원을 거의 뽑지 않고 있다. 식당을 협력업체가 운영할 때는 일시적으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 업체가 탄력적으로 충원해 식당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원이 생기면 대체 인력이 없어 식당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어렵다. 공사 무기계약직 직원(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만 승진은 불가능한 인원)이 일반직으로 바뀐 이후 이런저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공사 내 ‘올(ALL)바른 노조’(청년 노조)에 따르면 인력 부족과 임금 지급 차질 등이 특징이다.

무리한 정규직화 후폭풍, 지하철역 안전담당 근무자도 줄어

지난 5월 ○○역 구내 식당 앞에 게시된 ‘식당미운영’ 공지. [사진 공사 내부 제보자]

지난 5월 ○○역 구내 식당 앞에 게시된 ‘식당미운영’ 공지. [사진 공사 내부 제보자]

현재 공사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 2개와 MZ세대 주축인 올바른노조가 있다. 일각에서는 ‘채용잔치’ 후폭풍이 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사는 당시 무기계약직 1285명을 일반직으로 전환했다. 여기에는 지하철 보안관, 승강안전문 관리 직원 656명과 구내식당·이발사·목욕탕·매점 등의 종사자 139명 등도 포함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2019년 “관련 규정에 따라 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일반직화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에서는 또 일반직으로 전환된 1285명 가운데 192명(15%)이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청년 노조는 “일반직 전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민주노총 소속”이라고 전했다.

인력 부족에 따른 문제는 또 있다. 지하철역 안전 담당 직원도 대체인력이 부족하단 얘기가 나온다. 5·6·7·8호선 역의 경우 4인·3인 1조로 하던 역무원 일을 2인 1조로 바꿨다. 이 바람에 아예 휴가를 쓰지 못하는 직원까지 있다. 휴가를 가지 못한 일부 직원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 공사 전체 퇴직자는 3100명이었지만 새로 뽑은 직원은 2625명에 그쳤다.

일반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공사 재정에도 악영향을 줬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해당 연도에 지급해야 하는 공사 성과급은 해를 넘기기도 했다. 2020년 만들어진 ‘관공서의 유급휴일 및 대체 공휴일’ 수당은 아예 받지 못했다고 한다.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 위원장은 “계약직의 일반직 전환으로 공사 전체 직원 수가 급증했다”며 “이로 인한 인사 적체로 기존 일반직 직원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재정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일반직 전환으로 기존 직원이 임금 등을 손해보는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공사는 ‘총인건비제’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기존 인력의 임금을 잠식하는 것이 아닌 늘어난 일반직 수만큼 인건비를 다시 산출한다는 것이다. 공사 측은 퇴직자보다 신규 채용자가 적은 것에 대해 “2017년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양 공사 통합 과정에서 ‘중복 인력 단계적 감축’을 선언했다”며 “기존 중복 인력을 해소하기 위해 신규 채용을 줄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측은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승객 감소 ▶65세 이상 무임승차 증가 ▶지하철 운임 동결 등을 꼽았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 운수수익은 최근 2년 연속 5000억원씩 감소했다. 무임수송으로 인한 손실 역시 해마다 3000억원 가까이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공사 적자 규모는 1조원에 달했다.

재정 압박이 심해진 공사는 결국 지난해 철로 보수·차량 기동반 등 일부 분야를 민간 기업에 위탁해 하기로 했다. 민간 위탁에 따라 직원 1539명을 감축하는 게 목표다. 이 같은 경영혁신안에도 일부 노조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특히 청년 노조 측은 “무리하게 일반직화했던 직렬은 통폐합하고 해당 인원은 최소한 자회사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청년 노조의 ‘불공정’ 문제 제기를 이해하지만 공사 재정난의 핵심 요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지방공기업 특성상 정책과 공공성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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