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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칼럼

술 파는 북한 처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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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호텔 2층에 지난달 초 '평양 금강원'이란 식당이 문을 열었다.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이 투자해 만든 음식점이다. 이 식당이 주로 노리는 것은 남한 손님이다. 베이징에 사는 한국교민들이 보는 무료 정보지인 '주간코리언'에 컬러 광고까지 냈다. "예쁘고 순수한 평양 접대원들의 봉사와 멋진 공연은 평양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라는 광고카피가 암시하듯 이 식당의 경쟁력은 북한 처녀들이다. 북한 아가씨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해 외화를 벌어보겠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꽃 같은 평양 접대원들의 흥겨운 공연이 한창이었다. '반갑습니다' '휘파람'같은 귀에 익은 북한 가요에서 '달타령' '목포의 눈물' 같은 흘러간 남한 가요까지 율동을 곁들여 부르는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남한에서 온 40~50대 단체 관광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질렀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식당 측이 준비해둔 꽃다발을 아가씨들에게 안기며 사진을 찍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팁을 받지 않는 대신 꽃다발을 한 번 선사할 때마다 중국 돈으로 100위안(약 1만3000원)씩 식대가 올라간다.

베이징에는 15개의 북한 식당이 있다. 한국교민들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이란 동네에는 최근 북한 처녀들이 운영하는 스탠드 바 형태의 술집까지 생겼다. 나란히 붙어 있는 남한 술집과 경쟁 중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경쟁을 하며 돈을 벌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갸륵해 보였다. 하지만 영업 전략이 잘못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솔직히 평양 금강원의 음식은 별로였다. 평양 아가씨들을 볼 수 있다는 호기심도 한두 번이지 모름지기 식당이라면 음식 맛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압록강변의 중국 도시 단둥(丹東)에도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이 7개나 된다. 음식보다는 아가씨들로 손님을 끈다는 전략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북한 처녀들은 손님방에 들어가 술도 따라주고, 손님이 청하면 노래도 부른다. 진한 농담도 척척 받아넘기고, 폭탄주까지 받아 마신다.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된 북한 아가씨들은 보통 3년 계약으로 나온다. 밥과 술을 팔고, 웃음과 노래를 팔아 이 아가씨들은 한달에 600위안(약 7만8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3년동안 모으면 북한 기준으로는 적지 않은 목돈이 된다. 그래서 서로 나오려고 경쟁이 치열하고, 또 한번 나오면 어떻게든 계약기간을 연장하려고 기를 쓴다는 것이다.

이 아가씨들은 사실상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식당 영업시간 외에는 비좁은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고, 외박과 외출은 금지된다. 한 명이라도 '사고'가 생기면 지배인부터 종업원 전체가 소환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호 감시체제가 작동하고 있다.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올 20대 꽃다운 나이의 수많은 북한 처녀들이 이국 땅에 와서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외화 한 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아쉽겠지만 이 아가씨들의 빼앗긴 청춘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나라 잘못 만난 탓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이들의 청춘이 너무나 아깝고 불쌍하지 않은가.

김정일 위원장은 이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한번 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고, 이 어여쁘고 순진한 처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돌려줄 수 있는 길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한다. 말로는 그토록 국민을 위한다면서 외화벌이라는 명분으로 꽃 같은 처녀들의 청춘을 짓밟는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위선이고 죄악이 아니겠는가.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베이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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