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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2.25% 시대…경기 둔화 우려에도 '닥치고 물가' 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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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상은 ‘무딘 칼’을 휘두르는 것과 비슷하다. 물가를 올리는 요인만 제거하지 못하고, 경기 침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기에 십상이다. 그만큼 가계와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정책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그래서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13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내린 결정”이라고 입을 뗐다. 빅스텝 배경을 설명하며 1970년대 오일쇼크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의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16%를 넘어서던 시기다.

"유가 상승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그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경제 주체가 가격과 임금을 서로 올리고 그 결과 다시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더라도 고물가 상황이 고착돼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의 첫 '빅스텝 인상'이자, 첫 3연속(4,5,7월) 인상 결정이다. 기준금리가 연 2.25%를 기록한 건 2014년 8월 이후 처음이다. 기준금리가 2%대 고지에 올라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금통위의 금리 인상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메시지도 명확했다. 경기 침체 우려를 감수하더라도 일단 치솟는 물가 잡기가 먼저였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 올랐다.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의 속도도 빨라지고, 확산 정도도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기 침체와 물가 사이에 애매한 저울질로는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 6월 기대인플레이션도 3.9%로 전달보다 0.6%포인트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최고치이다. 물가 기대심리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장기간 끌고 가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빅스텝을 통해서 강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도 비슷한 이유로 강공을 펼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렸고 호주·스위스·뉴질랜드 등도 빅스텝을 밟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도 한은이 빅스텝을 밟게 한 요인이다. 이날 한은의 빅스텝으로 미국 기준금리(연 1.5~1.75%)와의 금리 차는 일단 상단 기준으로 0.5%포인트로 벌어졌다. 다만 시장의 전망대로 Fed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 상단 기준으로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

이 총재는 “(금리) 역전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최근 원화가치 하락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달러=1300원’ 시대도 장기화하고 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커지거나 장기화하면 외국인 자본 유출 등으로 환율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유가가 떨어지더라도 수입물가는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전까지는 추가 금리 인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 “앞으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당분간 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플레이션이 가속하거나 경기 둔화 정도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정책 대응 시기와 폭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융권에서는 연말의 기준금리 수준을 연 2.75~3%로 전망하고 있다. 이 총재도 이에 대해 “합리적 전망”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남은 3차례 금통위(8·10·11월)에서 0.25%포인트씩 2~3차례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 이 총재가 물가의 피크 아웃(정점 통과) 시기를 올해 3분기 말에서 4분기 초로 전망한 만큼, 올해 말까지는 금리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은이 고강도 긴축에 나서며 경기 침체 우려는 더 커졌다. 무엇보다 부풀어 오른 민간 영역의 부채가 소비와 투자를 제약할 수 있다. 한은 추산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6조4000억원, 대출자 1인당 32만2000원 씩 늘어난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기업의 이자 부담도 연간 3조9000억원 늘어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빅스텝으로 올해 가계 소비 지출 증가율을 0.5%포인트가량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도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이 5월 전망치(2.7%)를 다소 하회할 수 있다는 전망을 했다. 코로나 19가 재유행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꺾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총재는 민간소비 침체 가능성에 대해 “민간 소비는 저에게도 큰 걱정”이라며 “방역 정책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 소비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리 인상에 코로나19가 확산돼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가 강화되는 걸 전제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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