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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약투약범 찾아낸 검사…"잡아주세요" 112 신고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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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적인 게 각 나라마다 마약 문제가 심각해져야 컨트롤타워 기관이 생겨요. 그렇다고 우리도 심각해지길 기다릴 순 없잖아요. 한번 확산돼버리면 이미 늦어요.”

검찰에서 최고 마약 수사 전문가로 손꼽히는 박성진(59·사법연수원 24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어떤 나라의 마약 수사 기법이 발달했다는 건 그만큼 마약 확산이 심각하고 사전 통제를 못했다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수사를 아무리 잘한들, 이미 사회 전반에 마약이 퍼져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도 덧붙였다.

그는 검찰총장 직무대리로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혼란에 빠진 검찰 조직을 이끈 뒤 지난 5월 20일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28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퇴임 직후지만 10대 청소년 마약 확산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며 중앙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10대 마약공화국⑧]檢 마약수사 산 증인 박성진 “이제 컨트롤타워 만들자”

 박성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박 전 검사는 "마약 범죄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처벌과 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박성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박 전 검사는 "마약 범죄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처벌과 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박 전 대검 차장은 대한민국 검찰 마약 수사의 산증인이다. 1995년 그가 초임 검사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마약류 범죄는 주로 밀매·투약사범 적발 위주였다. 앞서 1970~80년대 한국에서 제조한 필로폰(메스암페타민) 등 마약이 일본 등으로 밀수출돼 사실상의 외교적 문제가 됐던 시절이 있었지만 소위 ‘범죄와의 전쟁’ 이후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던 때다. 동남아와 중남미에서 신종 마약류가 밀려 들어와 청소년까지 유혹하는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박 전 차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유통되는 마약은 주로 전통적인 필로폰이나 대마초 등이었고, 필로폰 1회분(0.03g)이 10만원 가까이 될 정도로 고가였다”며 “청소년이 마약류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펜타닐과 같은 향정신성물질과 합성 마약류를 SNS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 청소년 접근이 쉬워진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지금은 교육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차장은 평검사였던 2006년 미국 마약단속청(DEA) 초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은 어떤 최신 기법을 동원해 마약범죄를 수사하는지 등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박 전 차장이 보고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우리 애가 다닌 초등학교에 갔다가 아이들을 상대로 ‘Drug Free World(마약 없는 세상)’라는 캠페인이 열리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미국은 어린아이에게도 합법·불법 약물, 알코올 중독 등 예방교육을 절실한 마음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마약 없는 세상' 재단이 무료 배포하고 있는 대마초·합성마약·엑스터시·코카인·크랙·흡입제 등 각종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 동영상 및 교재들. 재단 홈페이지.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마약 없는 세상' 재단이 무료 배포하고 있는 대마초·합성마약·엑스터시·코카인·크랙·흡입제 등 각종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 동영상 및 교재들. 재단 홈페이지.

박 전 차장은 한국도 이런 교육을 할 때가 가까워졌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정부 각 부처에 흩어진 마약 대응 기능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마약 상황이 심각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불법 약물과 합법 약물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약물에 대해 통제·정책·교육·수사까지 다 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격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수많은 부처로 역할이 분산된 지금처럼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으론 안 된단 얘기다.

“美 초등생부터 예방 교육…단속, 치료·재활 통합 기구 필요”

그는 검사 출신이지만 “마약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전 차장은 “분산된 기능을 다 통합하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사법처분과 치료·재활만큼은 통합해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독자를 처벌한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재범이 발생한다. 결국 단속과 치료·재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이 두 기능만이라도 통합한 독자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성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박 전 검사는 "마약 범죄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처벌과 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박성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박 전 검사는 "마약 범죄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처벌과 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는 미국의 DEA, 태국 마약청(ONCB), 필리핀 마약청(PDEA)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마약청을 출범한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약 문제가 국가적 사안이 된 뒤에 사후적으로 대규모 전담 기구를 만들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고도 했다.

박 전 차장은 “미국이나 동남아 등 마약청을 별도로 두고 있는 국가들을 보면 마약 문제가 심각해진 뒤에야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느껴 전담 기관을 만들었다”며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길 기다릴 순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확산이 한 번 돼버리면 미국처럼 수십조 예산을 써도 통제도 안 될 뿐더러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박 전 차장은 “지금은 일부 주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한 미국 정부가 과거 왜 국민의 대마초 흡연을 단속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하며 ‘이율배반’ 사례를 또 하나 설명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엑스터시(MDMA·메스암페타민계 환각제) 한 알 먹고 대마초 하나 피우는 걸 전부 단속하기 시작했다면 전 국민을 단속해야 했고 결국 마약 대응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 됐을 것”이라며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니 어쩔 도리가 없어서 단속을 못 하는 거지, 대마초가 괜찮아서 단속을 안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檢 밀수-警 판매·투약 수사권 분리 제도적 보완해야”

박 전 차장은 2012년~2013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른바 ‘연예계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박 전 차장은 적게는 42회, 많게는 185회까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유명 여배우들을 불구속 기소하고, 서울 강남의 미용 시술 의사 두 명을 구속 기소했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했던 이 사건으로 “의사 처방에 따른 마약류 투약도 마약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지금의 검찰은 투약 사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가액 500만원 이상의 마약류 밀수 및 밀수 목적 소유·소지와 ‘그 관련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된 탓이다.

지난달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서울 금천구에서 필로폰 밀수범(가액 500만원 이상) A씨를 체포했다. 이후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다 필로폰 투약 도구를 소지하고 있던 B씨를 발견했고, 놀란 B씨는 얼떨결에 “투약했다”라고 자백했다. 검찰은 하지만 투약 사범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B씨를 긴급체포할 수 없었다. 대신 현장에서 112로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곤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B씨가 도망하지 않도록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어야 했다.

이를 놓고 한 검찰 간부는 “만일 B씨가 경찰이 오기 전 도주를 시도할 경우 검찰이 할 수 있는 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뿐”이라며 “이런 검찰개혁을 해서 국민이 얻는 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전 차장도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이 밀수 사범을 열심히 수사하다 보면 연결된 마약류 밀매 중간책이나 투약 사범들의 단서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못하게 됐다”며 “수사 단서를 경찰에 보낸다고 해도, 공범 추적과 검거 등 수사 지연이 불가피한데 그사이 공범들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면 수사의 맥이 딱 끊기고 효율이 떨어져 버리고 안 하니만 못한 결과가 난다”고 지적하면서다.

마약류 범죄는 밀수·밀매 등 공급과 투약 수요가 맞물려 이뤄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강조했다. 박 전 차장은 “앞으로 수사권 조정 제도를 보완해서 검사가 직접 수사하지 못하는 여죄에 대해선 경찰이 수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할 것”이라며 “그게 진짜 공조”라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연재된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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