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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시인 김삿갓 행적정리 박영국옹|방랑의 흔적 따라 8년째 전국 누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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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개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하늘과 구름이 얼비치는데/주인아 미안하다 말하지 마소/내사 청산이 물에 거꾸로 박힌 것이 더욱 좋애.』
조선조인 1800년대 우리나라의 핍박한 생활상을 그대로 표현한 풍류시인 김삿갓(김립·본명 김병연).
방랑시인, 풍자 골계(골계)시인, 생활시인으로 계속된 방랑생활로 문집 하나 남겨진 것이 없으며 유적 또한 별로 남아있지 않은 김 삿갓의 행적과 시편을 8년째 추적하고 있는 향토사학자 박영국옹(7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 5리).

<박 삿갓으로 불려>
박옹은 아직까지 수집되지 않은 김 삿갓 시를 찾아내고 김삿갓 흔적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 나서 이제는「박 삿갓」으로 불릴 정도다.
박옹이 김 삿갓과 인연을 맺은 것은 82년. 영월농협 조합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옹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60년대부터 생각해왔던 김 삿갓 묘지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동안 영월지역에선「김삿갓 묘가 영월에 있다」라는 막연한 소문만 전해 내려올 뿐이었다.
박옹은 어느 곳이고 사람만 모이는 곳이면 김 삿갓 묘비를 수소문, 마침내 82년l0월17일 영월군 하동면 와석1리 노루목에서 김 삿갓 묘를 찾아냈다.
박옹은 안동 김씨 후손인 김영배옹의 증언과 1940년 이응수 선생(작고)이 편찬한『김립 시집』에 김 삿갓 묘는 양백지간(태백산과 소백산사이)에 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노루목 묘를 김 삿갓 묘로 단정했다.

<고손까지 찾아내>
그러면 왜 방랑생활 중 전라도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김 삿갓의 묘가 노루목에 있을까.
박옹의 방랑생활은 이런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서울 청계천 고서점을 모두 뒤져 김 삿갓에 관한 책을 몽땅 구한 뒤 그의 생애 추적에 나섰다.
김 삿갓이 죽었다는 전북 동복에는 세 번씩이나 찾아가 그가 죽은지 3년만에 아들 호균이 노루목으로 옮긴 사실 등을 확인했으며 그 후손들을 찾기 위해 안동 김씨 종친회를 비롯, 경기도 양평 등을 수없이 헤맸다.
이로 인해 김 삿갓의 후손인줄 모르고 자란 고손까지 찾아냈다.
『김 삿갓 후손 대부분이 김 삿갓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지 않아 안타깝다』는 박옹은 『이제부터라도 문장가이자 서민문학을 창출한 조상으로 섬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옹의 욕심은 김 삿갓 행적과 생애추적에 그치지 않고 유적정리 및 시편 정리로 이어졌다.
87년에는 김 삿갓의 세 번째 회갑(삼갑)을 계기로 전국에 김 삿갓 추모 한시를 공모하면서 김 삿갓의 유필·시 등을 함께 보내도록 해 6백90편의 시편을 접수했다.

<추모한 시 공모도>
박씨는 이 가운데서 이응수편 김립 시집에 수록된 3백26편 이외에 2백여편의 시를 모을 수 있었다.
박옹은 요즘도 틈틈이 이 시들의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시선 김 삿갓 유족 보존회」위원장이기도 한 박옹은 84년 김 삿갓 묘지단장과 함께 군및 재경영월군민회 등의 도움으로 묘비를 세웠고 87년에는 전국 시가비 건립 동호회가 영월읍 금강공원에 방랑시인 김 삿갓 난고(김립의 호)시비를 건립했다.
박옹은 이와 함께 자신보디 60여년 앞서 김 삿갓의 시를 집대성한 이응수옹을 추모하는 비도 묘지 옆에 세웠다.
갑신정변의 주역 박영효와 먼 친척(16촌간)인 관계로 조부 때부터 영월에 정착, 영월에서 태어나 영월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영월국교)밖에 다니지 않은 박옹은 54년 면의원 의장에 당선돼 정치가로 나서기도 했으나 재산만 탕진, 55년부터 10년간 서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65년 귀향했다. 박옹은 이때 비로소 단종애사가 얽힌 영월의 유적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돋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향토사 연구를 결심했다.
65년 단종의 시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옆에서「월기경춘순절지처」란 비석을 발견한 박옹은 어느 누구도 이 비석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우리나라 5천년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향토문화·서민문화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박옹은『경춘비 발견은 내가 향토 문화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옹은 경춘이 남원의 춘향같은 지조 있는 관기로 소설 속의 춘향과 달리 동강에 몸을 던져 절개를 지킨 실존인물임을 밝혀 정비석씨를 통해『명기열전』으로 소개하도록 하기도 했다.

<『영월을 찾아』 발간>
영월지역의 지명과 전설 등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영월군내를 거의 답사해 내륙지방으로는 드물게 고구려 및 고려시대 산성 및 산성터 7개소를 발견했다.
또 1백여편의 전설 등을 수집, 83년에 단종에 관한 역사 설화 등과 묶어『단행본 영월을 찾아서』를 간행했다.
박옹은 이 책이 영월지역의 역사를 수록한데 뜻이 있는데다 그의 부친 정양옹이 74년 전에 저술한『고축집감』과 함께 영월지역 유일의 유가지인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5척 단신의 박옹은 1년에 한번 보름씩의 단식을 하며 건강을 지키는 한편 김 삿갓의 초연한 삶을 조명하면서 모든 것을 관조하는 삶을 배워 가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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