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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충격 빠진 '텔레그램 마약 총책' 정체, 그는 고3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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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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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찰은 한 ‘텔레그램 마약방’을 수사하던 도중 충격에 빠졌다. 총책이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8세 A군이었기 때문이다. A군은 필로폰·엑스터시·대마 등 마약류를 해외 판매상으로부터 밀수한 뒤 텔레그램 마약방을 통해 국내에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20~30대를 중간 판매책·환전책·인출책 등 ‘하선’으로 부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이 10대들에게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단순 투약뿐만 아니라 밀수, 밀매 등을 가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지난해에만 실제 마약류를 투약하고 있거나 밀수·밀매에 연루된 10대들의 수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연재기획-10대 마약공화국] 아무도 모르는 사이 청소년 마약 1만명 시대가 됐다

미국 비영리재단 '마약 없는 세상'이 제작한 청소년 마약 예방교육 교재 '크리스털 메스(필로폰)'의 진실편. 재단 홈페이지.

미국 비영리재단 '마약 없는 세상'이 제작한 청소년 마약 예방교육 교재 '크리스털 메스(필로폰)'의 진실편. 재단 홈페이지.

대검찰청 「마약류범죄백서(2012~2021)」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에 송치된 10대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대치인 450명을 기록했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10년 전 2011년 41명의 11배가량이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내 마약 범죄의 평균 암수율(검거 인원 대비 실제 총 범죄자 수를 계산하는 배수)은 28.57배로 산정되는데, 검거 사범 450명에 암수율을 곱한 1만 2857명가량이 전체 10대 마약사범 숫자로 추산된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10년 사이 마약 사범의 평균 연령대도 급속도로 연소화(年少化)하고 있다. 2012년 전체 사범 중 38%를 차지했던 40대는 2019년 절반 수준(21.7%)으로 줄었고, 대신 30대(25.7%)가 연령별 1위에 올라섰다. 다시 2년 후인 2021년엔 20대가 5077명(31.4%) 검거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그만큼 10대 때 마약을 처음 접한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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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강남에 살아요.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이고요. 필로폰, 합성대마, 케타민, 엑스터시 다 해봤어요. 코로나 전에는 어른들 민증을 빌리고 클럽 가서 했고요. 코로나 때는 친구들이랑 파티룸, 호텔 빌려서 했어요. 마약약 파는 오빠한테 싸게 많이 떼다가 친구들한테 비싸게 팔아서 몇 천만원을 벌기도 했어요.”

19세 B양이 지난해 검찰에서 마약류 투약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 판매했다고 한 진술 내용이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은 “최근 투약자를 상담해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연예인 지망생이나 고위층 자제만 마약을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검·경에 따르면 10대 마약상이 마약을 입수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온라인을 통해서다. 국제 마약상들이 구축한 ‘딥 웹(IP주소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특수 웹브라우저로만 접속 가능한 웹)’이나 텔레그램 등 보안성 높은 소셜네트워크(SNS)가 주요한 소통 수단으로 이용된다. 추적이 어렵도록 결제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쓴다. 이때 해외에서 주문한 마약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수령한다.

10대들은 의사의 처방으로 구할 수 있는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를 노리기도 한다. 경남경찰청은 지난달 비만억제제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 ‘디에타민’을 전국적으로 불법 처방받아 온라인으로 유통한 10대 100여명을 적발했다.

10대 마약사범 급증세에는 일부 의사와 약사들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경찰 수사관은 “일부 의사는 꾀병 연기를 하는 10대에게 속거나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청소년에게 손쉽게 마약류 처방전을 써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약사는 허위 처방전을 이용해 마약류 장사를 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경찰은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10월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상당수 학부모가 입시생 자녀에게 “공부 잘하는 약”이라며 마약성 ADHD(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를 불법으로 구해다가 먹이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변호사는 “10대 중에는 ‘기자가 병원이나 SNS 등을 통해 구해 보니 쉽게 구해지더라’ 식의 수법을 상세히 묘사한 보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는 경우가 많다”라고 소개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각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마약에 대한 불감증이 퍼져 있는 게 10대들이 마약을 하도록 부추긴다”라고 지적한다. 현재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 들어가면 마약인 코카인을 내세운 독일 음악 「Kokain 2021」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 쉽게 검색된다. 일부 식당에서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처럼 음식에 마약을 수식어로 내세우는 경우도 흔하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는 “마약이라는 단어 남용으로 청소년들이 마약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라며 “마약의 어휘성이 넓어지는 동시에 경계심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이 마약에 손대지 않도록 예방하는 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은 “학교에서 이미 활성화된 흡연이나 음주 교육과 달리 마약 교육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마약에 중독된 뒤 재범을 막을 치료·재활 인프라도 부실하다. 전국 21곳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 가운데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병원은 인천의 참사랑병원, 경남의 국립부곡병원 등 단 두 곳뿐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입소식 재활 시설은 민간 단체 경기다르크협회가 경기 남양주시에서 운영하는 한 곳뿐이다.

근본적으로 마약은 대부분 해외에서 제조돼 국내로 밀수되는데, 이를 단속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삼공 관세청 국제조사과 사무관은 “마약 수사직군 경찰만 약 1150명인데, 관세청 마약 전담 인력은 70명이 채 되지 않는다”라며 “이 인원이 전국의 모든 공항·항만 등 세관 감시를 도맡아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국가수사본부·식품의약품안전처·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재활·치료·예방교육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지금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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