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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치' 떠들던 푸틴, 獨·日 재무장 길 터줬다…'전범국 면죄부'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수년간 정상 강대국이 되는 것에 논쟁이 일었던 두 나라, 독일과 일본에 ‘무장화’의 길을 터줬다. 과거 전쟁을 일으켰던 두 나라의 죄책감은 이제 2차 대전 마지막 생존자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도쿄 총리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도쿄 총리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외교』의 저자인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협의회(ECFR) 이사가 미국의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내놓은 진단이다.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팍스 아메리카나의 진정한 종말’이라는 글에서 “러시아의 침략이 그동안 스스로 방위정책에 제약을 걸어왔던 독일과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불을 지폈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 4위 경제대국이다. 반면 전세계 군사력 평가기업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올해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일본은 5위, 독일은 16위다. 이를 두고 레너드 이사는 “그간 양국이 의식적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기피하고 외교 정책에 대해 평화주의적 접근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과 일본은 2차 대전 침략국이라는 ‘원죄’ 때문에 오랜 기간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 그 돈을 유엔에 투자하면서 한때는 각각 2, 3위 유엔 예산 분담국이 되기도 했다.

獨·日, 방위비 GDP 2% 수준까지 올리기로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 나라의 외교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놨다고 레너드 이사는 진단했다. 러시아의 침공 사흘 뒤인 지난 2월 27일, 평소 신중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독일 방위 정책의 변화를 선언한 혁명적인 연설이 바로 그 전환점(Zeitenwende)을 보여준 순간이라면서다.

당시 숄츠 총리는 독일 국방비를 올해부터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리고, 1000억 유로(약 135조원)의 국방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금으로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와 이스라엘제 드론을 구입하기로 했다. 그는 “더 이상 발사 안되는 총, 날지 못하는 전투기, 항해하지 못하는 전함으로 독일군을 무장하지 않겠다”면서 “이는 우리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11일엔 독일 상원은 국방 기금을 최종 승인·확정했다. 기금 조성을 위한 헌법 개정도 승인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독일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호시탐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을 꾀했던 일본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레너드 이사는 “2005년 일본과 중국의 국방 예산은 거의 같았지만, 현재는 중국 국방예산이 일본의 5배고, 2030년이면 격차가 9배까지 늘어날 것”이라면서 “러시아처럼 쇠퇴하는 강대국이 아닌, 떠오르는 강대국인 중국과 마주한 일본은 독일보다 더 복잡한 상황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7일 방위비를 향후 5년 이내 GDP의 2%로 늘리는 내용이 명시된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을 국무회의에서 채택했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일본의 방위비는 지금보다 5조엔(약 50조원) 이상 늘어나, 총액 100조원대를 넘어선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지역 마카리브 지역의 한 마을에서 한 남자가 파괴된 집을 재건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지역 마카리브 지역의 한 마을에서 한 남자가 파괴된 집을 재건하고 있다. 연합뉴스

"2차대전, 역사로…美, 평등한 동맹 질서 구축"

기고문은 “러시아의 침략이 독일과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일부 비판의 목소리마저 불식시켰다”고도 지적했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러시아가 유럽, 특히 독일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자국 무장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 국민도 “러시아 침략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면서 무장 강화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독일 현대사연구소(Ifz)의 안드레아스 비르싱 소장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항한 독일은 마침내 ‘역사의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과거 나치와의 단절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고문은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 대만 전쟁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내세워 자신들의 과거 범죄 기억을 가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재무장화는 향후 국제 안보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지역 안보에 더욱 깊이 관여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두 나라를 중심으로 역내 국가가 긴밀히 협력할 것으로 봤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자신들의 의제 설정에 적극 나서게 된다는 의미다. 레너드 이사는 “이는 정확히 중동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며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이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마저도 자신의 실익이 보장되지 않는 미국의 요청에 거부하고 저항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뮌스터 지역의 군사 훈련 지역에서 곡사포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뮌스터 지역의 군사 훈련 지역에서 곡사포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은 “팍스 아메리카나가 글로벌 혼란에 자리를 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너드 이사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민주주의 글로벌 동맹 공고화와 러시아·중국의 후퇴를 원했지만, 실상은 독일·일본이 재무장과 지역 안보 질서 재편이 진행 중이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자국 주도의 '일극 체제' 본능을 억제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두 나라(독일·일본)의 재무장화는 2차 대전이 기억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순간”이라면서 “이제 미국은 동맹국을 ‘후배 파트너’가 아닌 진정한 이해 당사자로 대하는, 현재보다 훨씬 공평한 동맹 질서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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