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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종말 어떻게든 온다…그 후 지저분한 폭력적 러시아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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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69) 러시아 대통령의 통치가 끝나면, 러시아는 매우 지저분하고 폭력적인 과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푸틴주의 강령』의 저자인 브라이언 테일러 미국 시라큐스대 러시아정치학과 교수는 26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푸틴 이후 권력승계’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푸틴의 종말은 오고 있으며, 러시아의 미래는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겨울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초청해 연설하고 있다. [AP=중앙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겨울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초청해 연설하고 있다. [AP=중앙일보]

끊임없는 건강 이상설…'푸틴의 종말' 대비해야

테일러 교수는 “푸틴이 즉각적인 암살 위험이나 쿠테타, 대중혁명의 위기에 직면한 건 아니다”면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푸틴의 건강 이상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푸틴은 절대 권좌에 앉아 있어선 안 될 사람’이란 언급 등은 푸틴의 실각에 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했다.

러시아의 탐사보도 매체 더 프로엑트(The Proekt)는 푸틴 대통령이 갑상선 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매체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갑상선암 전문의를 35차례 진료를 받았으며,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59차례 만났다. 이스라엘 의사인 마이클 프뎀더만은 “일반적으로 암을 포함한 갑상선 질환은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먼저 진단한 뒤, 종양 전문의와 외과의가 치료에 참여한다”며 갑상선암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푸틴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면직 등의 사유로 통치가 끝나는 경우, 러시아는 극심한 내분에 휩싸일 것으로 테일러 교수는 전망했다. 지난 20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푸틴 대통령은 헌법을 두 번 고치고, 의회와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축소했다. 또 야당 인사를 탄압해 투옥·살해했다.

푸틴 대통령은 헌법을 고쳐 2036년까지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질서 있는 권력 이양 장치’를 제거했다. 그래서 그의 실각은 미국이나 중국 지도자의 실각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러시아 야당 대표 알렉세이 나발니가 2012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당시 푸틴 총리의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야당 대표 알렉세이 나발니가 2012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당시 푸틴 총리의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법적 '푸틴 후임'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푸틴 이후 권력 승계’는 간명하다.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경우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되며, 러시아 상원은 2주 안에 대통령 선거일을 결정한다. 절차대로라면 미하일 미슈스틴(56)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과거 1999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건강 문제로 사임할 당시 푸틴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모스크바 출신인 미슈스틴은 러시아 연방 세무청장을 거쳐 2020년 총리로 발탁됐으며, 2008년 독일 도이체방크의 파트너였던 러시아 투자회사 UFG의 사장을 역임했다. 푸틴 대통령과는 ‘하키 열성 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관료적’ 인물에 가까우며, 푸틴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도 아니다. 권력 기반이 두텁지 못해 고전할 것이라고 서방 외교가는 관측했다. 데이비드 린겔바흐 미국 볼티모어대 교수는 정치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푸틴의 대안으로 꼽히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미슈스틴에게 주어진 임기는 짧을 것”이라고 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가 지난달 21일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가 지난달 21일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쇼이구·메드베데프·볼로딘 등 권력쟁탈전 예상

결국 러시아의 새 지도자는 법 절차보다 엘리트 간 권력 쟁탈전을 통해 선출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후보군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 바체슬라프 볼로딘 두마(하원) 의장,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등이다.

다만, 이들은 쿠데타보단 ‘합종연횡’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권을 확실히 보장해줄 ‘후계자’를 찾은 후 그를 미슈스틴 총리의 대항마로 내세워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택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후계자를 찾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파벌주의 경쟁에 빠질 수 있다.

테일러 교수는 “푸틴의 이너서클에서 대선 후보를 배출할 경우, 세계는 ‘선거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러시아 대선’이라는 매우 희귀한 광경을 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권력 이양 역사를 볼 때 파벌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과거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사망 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은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쳐 지도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스탈린 사망 후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는 군대를 동원해 경쟁자를 쳐내기도 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19일 국방부 이사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19일 국방부 이사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정권’ 붕괴, 무력 충돌 가능성도

푸틴 실각 이후 ‘푸틴 정권’의 붕괴 가능성도 크다. 정치학자 안드레아 켄달-테일러와 에리카 프란츠의 조사에 따르면 독재 정권은 의외로 긴 지속성을 갖지만, 푸틴 정권과 같은 ‘일인 독재’는 정권교체에 매우 취약하다. 군주제·일당체제·군부독재 등은 지도자 사망 뒤 5년까지 76%가 유지됐지만, 일인 독재 정권은 같은 기간 44% 유지된 데 그쳤다.

예외적으로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와 북한의 김일성(1912~94)은 권력을 가족에게 직접 이양해 정권을 이어갔지만, 푸틴은 딸들에게 통치를 위한 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 교수는 푸틴 정권의 붕괴와 러시아 엘리트의 권력 투쟁이 무력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경고했다. 그는 “권력 투쟁에서 지는 쪽은 굴복하기보다는 반격을 원한다”며 “때론 탱크와 총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와 잔혹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핵 강대국 러시아에서 푸틴의 실각과 푸틴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전 세계적인 우려를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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