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지만, 유독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선 ‘불통’이 이어지고 있다. 경호 등 공적 예산이 투입되는 김 여사의 일정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모르쇠’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확보하지 못한 사진 자료 등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문에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제2부속실 폐지’를 백지화하고,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기 위한 공적 조직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된다.
"코바나 근무 2인, 한남동 '공관팀' 근무 예정"
김 여사의 ‘봉하마을 지인 대동 논란’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1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그분은 저도 잘 아는 제 처의 오래된 부산 친구다. 아마 (권양숙) 여사님 만나러 갈 때 좋아하시는 빵이라든지 이런 걸 많이 들고 간 모양”이라며 “아마 들 게 많아서 같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봉하마을이라는 데가 국민 누구나 갈 수 있는 데 아니냐”고 덧붙였다.
앞서 정치권에선 지난 13일 김 여사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함께 참배한 여성 4명이 누구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1명은 김량영 (충남대) 교수, 나머지 3명은 대통령실 직원”이라며 “대통령실 직원 3명 중 1명은 코바나컨텐츠 근무를 잠깐 했고, 다른 한 명 역시 그쪽(코바나컨텐츠)에서 일을 도왔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직원 중 나머지 한 명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김 여사의 지인으로 확인된 김 교수는 과거 김 여사가 운영한 전시기획사인 코바나컨텐츠의 전무를 지낸 이력이 있다. 윤 대통령의 대선 당시 선대위에서 본부장을, 당선 뒤 인수위에선 자문위원을 각각 지냈다. 코바나컨텐츠 근무 전력이 있는 직원 2명은 현재 대통령실 채용 검증이 진행 중으로, 윤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로 거처를 옮기면 ‘공관팀’ 소속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장 야권에선 비판이 나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를 통해 “봉하마을에서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직원이 공식 경호와 의전까지 받으며 참배를 마쳤다”며 “수행원 자격이 지인, 친구여선 안된다. 대통령 부부 공식일정 참석대상은 행사 취지에 맞는 인사들로 엄선하는 게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제2부속실 부활" 주장, 尹 "국민 여론 수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제기된 김 여사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반려동물과 함께 휴식을 취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김 여사의 팬클럽 등을 통해 최초 공개됐다.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해당 사진의 촬영 여부를 모르고 있다가, 팬클럽에 해당 사진이 공개된 이후 관련 사건을 인지했다. 이외에도 김 여사의 비공개 일정이나 사진 등이 대통령실 공보 라인이 아닌 팬클럽 등을 통해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대통령실이 부속실 내에 김 여사의 활동을 지원하는 복수의 전담 행정관을 배치했음에도,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야권에선 “제2부속실을 만들어 김 여사가 공적인 역할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지원 전 국정원장)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양자택일해야 한다”며 “김 여사가 조용한 내조에 집중하게 할 것인지, 국민께 공약 파기를 공식 사과한 후 제2부속실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보좌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든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관계자는 “공식 예산이 집행되는 제2부속실을 설치하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대통령 배우자와 관련한 전반적 내용을 검토할 수 있다”며 “법적으로 자연인 신분인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견제 및 감시가 용이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요구와 별개로 여권에서도 김 여사 보좌를 위한 공적 조직의 설치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국민의힘은 김 여사 관련 논란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빌미가 된 야권의 ‘비선’ 프레임에 걸려들까 우려하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꾸 논란이 있는 건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도 “차라리 제2부속실을 부활하는 게 좋겠다”며 “공식화하게 되면 불필요한 논란이 안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김 여사 일정 관리 등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주류라고 한다. 또 참모진 회의에서 김 여사의 행보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들도 논의하고 있지만, 정작 윤 대통령에게는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김 여사를 보좌할 수 있는 제2부속실, 또는 공적 조직 설치 문제는 윤 대통령의 공약 파기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결국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이와 관련, 이날 윤 대통령은 ‘정치권의 제2부속실 설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부인 관련 일정을) 공식ㆍ비공식으로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번 국민 여론을 들어가면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