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물리치는 전쟁/이명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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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만병의 근원은 탐욕이다. 지금 이땅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질병들의 근원은 탐욕이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만해도 도둑범죄자 집단 빼놓고는 모두의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한 까닭은 그 속에 그 어떤 탐욕의 사술이 끼어있지 않은가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내각제 강행 빌미 의심
범죄와의 전쟁을 빌미로 국민의 기를 꺽어놓은 다음에 내각제 개헌을 해버리려는 속셈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규탄성명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속이야 X­레이 카메라로 사진 찍어볼 수도,초음파기로 들여다 볼 수도 없는 것이고 보면,남의 의도에 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긴 하다.
그리고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민자당 드라마」를 연출하는 연출자들의 속셈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다. 남의 집안싸움 일이니 감 놓아라 사과 놓아라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지만 그렇지도 못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다.
민자당이 무슨 자그마한 주부들의 모임 이름이거나 골프클럽이름 정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문제는 나라에 몸담고 살고 있는 4천2백여만명의 운명에 관한 중대사를 떡주무르듯 하는 나라의 공당이니 동네아이들 싸움 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는데 있다.
혹자는 지금의 판도를 백년 가까이 뒤로 물러서 있는 조선조 말기의 형세와 비교하며 불길한 점까지 치기도 한다. 지금 남과 북에서 세계의 열강들은 우리에게 밀려오는데 나라를 끌고 간다는 사람들은 밤낮없이 음모와 공작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점장이가 아니더라도 나라의 불길한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앉아 한번 곰곰 헤아려 보면,픽 어이없는 웃음이 안면의 근육에 작은 경련을 일으킨다. 이제 50∼60년,혹은 60∼70년쯤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는데,그래서 남은 날도 얼마 안되는 데,뭐 그렇게 열을 올려가며 야단들인가.
야단까지는 좋지만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에 촛불의 처지인데 술상펴 놓고 내가 한잔 더 마셔야겠다고 술상을 뒤엎으며 그렇게 법석을 떨고 있는가.
그동안 그 만큼 한자리한 것만해도 옛처지를 되돌아보면 괜찮지 않은가.
과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관대작의 자리라면 몰라도,몇십년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가난에 찌들었던 시골머슴애에 불과했는데 지금 뭐 그리 대단한양 거드름을 피우는가.
근사한 사람,멋있는 사람은 혼자 거드름을 피워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아닌 많은 사람들의 삶의 조건들을 형성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맺어지는 역사의 열매가 바로 「멋있는 사람」이다.
○구역질나는 나라 모양
요즈음 나라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어떤 사람은 구역질이 난다고 아예 산속으로나 들어가야 겠다고 말한다. 왜 구역질이 나는가.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저질ㆍ저차원의 악취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좀 식히고 좀 먼 곳을 바라보자.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역사의 낙오자 밖에 되지 못한다. 오늘 밖에 모르는 자는 천박한 존재 밖에 되지 못한다. 한탕 뛰어 잘살아 보겠다고 칼과 망치를 들고 이집 저집 뛰어들다가 붙잡혀 텔리비전 화면에 비치는 뒷골목의 영웅들을 우리가 볼 때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오늘만 보고,먼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짧은 생각에 빠져들어 저 꼴의 인생밖에 못살게 되었을까. 팔자 탓일까,세상 탓일까,누가 배워 준 탓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멀리 내다보지 못한 탓이다.
고등동물과 저급동물의 차이는 바로 멀리 내다봄의 차이에 있다. 사람의 삶의 차원도 멀리 내다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민족의 삶도 마찬가지다. 야바위꾼의 삶은 오늘밖에 모르는 자의 짧은 계산에 의해 살아가는 천박한 삶의 전형적 모습이다.
야바위꾼은 임시변통을 위해 거짓말을 떡먹듯한다. 그는 거짓말로 자기의 삶을 분장해간다. 그는 거짓말의 탄로를 거짓말로 봉쇄하거나,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줄행랑쳐 위기를 모면한다. 짧게보면 그는 영리한 사람이요,재치있는 재주꾼이다.
그러나 야바위꾼의 종말은 너무나 분명하다. 「더러운 인생」이다. 누구앞에 내놓을 만한 「떳떳한 삶」이 아니다. 오늘은 속일 수 있어도 역사의 내일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벌여야할 투쟁은 탐욕과의 싸움이요,탐욕을 물리치는 전쟁이다. 과거 이 땅 40여년의 헌정사에서 거듭된 개헌작업들은 4ㆍ19이후와 지난 6ㆍ29 이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탐욕의 부산물이었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불화의 근원은 대통령중심제가 좋으냐,내각제가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둘다 일장일단이 있는 민주정치제도다. 따라서 무엇을 채택하든 선의를 가지고 잘만 운영하면 제대로 된 민주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학 개론수준의 상식이요,어쩌면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라해도 좋다.
○개헌은 국민뜻 따라야
우리의 헌정사에서 두번 밖에 없었던 올바른 헌법개정 작업은 각각 4ㆍ19혁명과 6월 항쟁으로 나타난 보통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헌법개정이었다.
이외의 여러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은 비보통사람들인 권세가들의 주도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의 요구에 따르지 않은 헌법개정은 역사를 왜곡시켜 권력의 파탄,나아가 나라의 불행으로 이끌어갔다는 사실이다.
모든 좀도둑과 강도들의 범죄행위는 한탕에 모든 욕심을 채우겠다는 탐욕의 행각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오늘 이 나라를 뿌리에서 뒤흔들어 놓는 정치ㆍ경제적 추문들도 탐욕의 부산물이다. 이 땅의 보통사람의 삶이 밝아지려면 이 땅의 뒷골목과 앞골목에서 벌어지는 온갖 탐욕의 몸짓들을 제거하는 탐욕에 대한 일대전쟁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서울대 교수ㆍ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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