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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웅 최재형 이렇게 숨졌다…102년만에 찾은 '비밀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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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는데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 9일 이태룡(67)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올해 초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860~1920)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기록을 발견한 순간을 얘기하면서였다. 그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사례를 연구한다. 여느 때처럼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탑재된 일본 외무성 기록을 살피던 그의 눈길이 1920년 5월 1일 자 비밀문서에서 멈췄다. ‘노령 니콜리스크 불령선인(不逞鮮人) 상황’이란 제목이 붙어있었다.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자가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이르던 표현이었다. 문서의 발신인은 조선총독부 경무청장, 수신인은 일본 내각 관료들이었다.

1920년 5월1일자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이 같은 해 4월 피살돼 순국할 당시 정황이 기록돼 있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1920년 5월1일자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이 같은 해 4월 피살돼 순국할 당시 정황이 기록돼 있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기록엔 1920년 4월 5, 6일 이틀간 러시아 니콜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벌어진 상황이 담겨있었다. 당시 조선인 가택에 들이닥친 일본 헌병대는 곳곳을 수색한 뒤 76명을 체포했다. 그들은 니콜리스크 부시장을 맡고 있던 최재형 선생에 주목했다고 한다. “배일(排日) 조선인을 선동하고 우리 군을 저격하는 등 무기를 사용해 반항적인 행동을 했다. 혁명군을 원조하는 주모자로 판명됐다”는 게 일제의 판단이었다.

결국 최 선생은 이날 오후 헌병부대에 이끌려 이송되던 중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문서 말미엔 ‘헌병분대가 청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최 선생 등이 빈틈을 노려 달아나서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라고 적혀있었다. 일제에 총살된 것으로만 알려졌던 독립영웅의 비참한 말로, 게다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였다.

그때부터 이 소장의 새로운 ‘발굴’이 시작됐다. 독립유공자 관련 학습자료를 만드는 출판사 미래엔과 손잡고 공동작업에 나섰다. 잊힌 영웅에 대한 기록을 하나라도 더 찾아야 하고, 최 선생이 업적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서훈을 받았다는 게 이 소장의 평가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했다.

1920년 1월 10일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이 반일무장투쟁 단체 독립단 단장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1920년 1월 10일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이 반일무장투쟁 단체 독립단 단장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일본 외무성 기록에서 최 선생의 흔적 157건이 발견됐다. 직접 무장투쟁을 이끌었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있었다. “최재형이 단장인 독립단이 러시아군 총 2백정과 탄환 1만발을 빼돌리려고 한다. 단원 7명에게 권총 7정을 지급해 여차하면 강탈하고, 이후 수백 명을 동원해 중국 지린성으로 운반할 계획이다. 최재형이 독립단장으로서 이 일에 가담했다는 건 연해주와 상해정부가 분리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 1920년 1월 10일 보고)

1922년 11월 10일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의 장남 최 코루리(최고려)가 러시아 적군 직속 고려혁명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1922년 11월 10일 일본 외무성 기록엔 최재형 선생의 장남 최 코루리(최고려)가 러시아 적군 직속 고려혁명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사진 이태룡 박사 제공

최 선생의 장남 최운학씨가 ‘최고려’란 이름으로 고려혁명군 1200명을 이끄는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실도 최초로 밝혀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최재형 선생은 그간 사재를 털어 독립투쟁을 지원하고 교육에 앞장선 인물로만 알려졌다. 그가 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공식기록으로 확인됐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문서에 최재형 선생의 묘가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사진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국립서울현충원의 문서에 최재형 선생의 묘가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사진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최근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이 소장의 발굴 내용 등을 근거로 최재형 선생의 서훈을 높여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60년 전 심사 대상에서 빠졌던 동의회·권업회·독립단 활동 등을 반영하면 서훈을 높일 근거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일부 독립운동가에 추가서훈을 한 선례도 고려했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에게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1962년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는데 추가로 수여한 것이다. 2019년엔 독립장(3등급·1962년)을 받았던 유관순 열사에게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에게 현충원에 있다가 멸실된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고 서훈을 높여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다.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모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 연설 도중 안중근 의사 등과 함께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축적한 부로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힘썼다. 그는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순국했다. 유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다. 후손들 대부분의 국적은 러시아다. 대한민국 정부는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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