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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이 크다 말았다"…너무 일찍 그친 비, 공장까지 비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일 오후 전남 화순군 사평면 주산리 주암호 상류가 메말라 있다.   광주와 전남의 상수원이자 여수국가산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암호가 계속되는 가뭄에 저수율이 28%가 채 안 된다.   전날 주암호 인근지역에 내린 평균 30㎜의 비는 토양에 흡수, 저수율에는 도움이 안 됐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전남 화순군 사평면 주산리 주암호 상류가 메말라 있다. 광주와 전남의 상수원이자 여수국가산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암호가 계속되는 가뭄에 저수율이 28%가 채 안 된다. 전날 주암호 인근지역에 내린 평균 30㎜의 비는 토양에 흡수, 저수율에는 도움이 안 됐다. 연합뉴스


“마늘이 크다 말았어요. 비가 너무 일찍 그쳐서 아쉽습니다.”

6일 충북 단양군 단양읍 장현리에 사는 한석원(60)씨는 바싹 마른 마늘밭을 보면 속이 타들어 간다. 단양 산간 지역인 이 마을에는 올 4월, 5월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전날(5일)부터 4~5㎜의 ‘단비’가 내렸지만 8250㎡ 규모의 한씨 마늘밭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골프공 크기밖에 못 자란 마늘

한씨는 “두 달 넘게 이어진 가뭄으로 수확을 앞둔 마늘 생육이 지지부진하다”며 “지금쯤 어린아이 주먹만 해야 할 마늘 크기가 골프공 크기에 불과하다. 마늘 줄기는 스치기만 해도 부러진다”고 말했다.

34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다. 빗물과 계곡물을 물탱크에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한씨는 “수위 7m 물탱크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줄어서 ‘물을 아껴 써라’고 아침마다 방송 중”이라며 “지하수 관정 3곳을 팠는데 흙탕물이 나와 식수로 쓰지 못한다. 이틀 전부터 급수차로 물을 받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사람 먹을 물도 부족한데 밭작물에 따로 물을 뿌리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양수기로 밭에 물 뿌려봐도 잠시뿐

충남 보령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김석훈씨는 “양수기를 동원해 밭에 물을 뿌려 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라며 “심하게 먼지만 날리고 스며드는 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충남지역 5월 평균 강수량은 찔끔 내린 수준이다. 5.4㎜로, 예년 평균 94㎜ 대비 5.7% 수준에 불과하다. 전국(5.6%)과 비슷하다. 문제는 5월이 파종이 끝난 밭작물이 한창 자랄 시기란 점이다. 가뭄에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다. 밭 가뭄단계가 경계(토양유효수분 30%) 또는 심각(토양유효수분 15%이하)으로까지 악화할 수도 있다.

남상훈 충남도 농업정책과장은 “노지 밭작물 재배지역 등을 중심으로 물 부족 우려 지역을 긴급 점검한 뒤 안정적인 급수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충일 연휴 오랜 가뭄 속 전국 곳곳에 단비가 내렸으나 가뭄 해갈엔 역부족이다. 사진은 6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 논에 물이 차 있는 모습. 뉴스1

현충일 연휴 오랜 가뭄 속 전국 곳곳에 단비가 내렸으나 가뭄 해갈엔 역부족이다. 사진은 6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 논에 물이 차 있는 모습. 뉴스1

겨울철~봄철 이어진 가뭄 

4일 오후 제주를 시작으로 현충일 연휴 기간 전국에 비가 내렸으나 가뭄 해갈엔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제주와 남부지방, 강원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적지 않았으나 겨울철부터 봄철 사이 가뭄이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가뭄에 경북 안동·예천 등 지역에선 5월 콩 파종, 고추 모종심기 시기를 놓친 농가도 허다하다고 한다.

부진한 작황에 자연히 노지 밭작물 가격이 들썩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일 기준 양파 15㎏의 도매가격은 1만7000원 정도로 1년 전보다 97% 올랐다. 한 달 전에 비해 38% 상승한 가격이다. 감자도 올랐다. 20㎏ 도매가가 3만8000원 정도로 1년 전보다 57% 비싸졌다. 가뭄이 길어지면, 가격은 꺾이지 않게 된다.

경남 함안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62) 씨도 “휴일에 단비가 내렸지만, 아직 모내기 등을 끝내지 못한 곳이 많다”며 “하루빨리 많은 비가 오지 않으면 벼농사는 물론 마늘과 양파 등 다른 농작물 농사도 망칠 판”이라고 말했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양파와 마늘 등 노지 밭작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뭄이 지속되면서 양파와 마늘 등 노지 밭작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업용수 끊길까 걱정 

공업용수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 중 한 곳인 충남 서산 대산공단의 경우 공업용수를 공급해온 대호호의 수량이 급격히 줄었다. 대산공단이 사용하는 공업용수는 하루 평균 28만㎥ 정도 된다. 대호호에서 12만㎥(42.9%)를 공급받는데 대호호 저수율이 최근 30.4%까지 떨어진 상태다. 대호호의 경우 저수율이 20% 이하로 낮아지면, 농업용수를 먼저 공급하게 돼 있다고 한다. 자칫 공단으로의 물길이 끊길 수 있단 의미다.

전남 여수국가산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암호 상류도 메말라 있다. 주암호는 광주와 전남의 상수원이기도 하다. 현재 저수율은 28%가 채 안 된다.

포항철강공단지역도 공업용수 부족을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달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없어 가뭄 피해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지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뭄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농림부=뉴스1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뭄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농림부=뉴스1

'기우제' '관정개발'...물 확보 안간힘

부족한 강수량은 산불 발생위험까지 높인다. 최근 대형산불이 발생한 경남지역은 최근 6개월간 누적 강수량이 209.3㎜로 평년 439㎜의 46%에 해당하는 ‘기상가뭄’ 상태다. 기상 가뭄은 특정지역의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이 과거 같은 기간의 평균 강수량보다 적어 건조한 기간이 지속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더욱이 지난달 5일부터 이달 4일까지 한 달간 경남 거창·합천 지역에는 단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길어지는 가뭄에 ‘기우제’를 지낸 곳도 있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과 장기농업협동조합 등은 최근 장기읍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에 참석한 김복조 포항 남구청장은 “이번 기우제가 극심한 가뭄으로 힘겨워하는 농민들의 근심과 걱정을 조금이라도 달래줬으면 좋겠다”며 “가뭄극복을 위해 마을별 하천굴착과 관정개발 등 행정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도 물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6일 노지 밭작물에 대한 급수대책을 위해 25억원을 지원한 상태다. 가뭄 상황에 따라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각 지자체는 예비비 등을 투입해 관정 개발이나 살수차 지원, 하천 준설 등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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