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 은퇴, 2004년 ‘최고의 라운드’ 없었더라면…

미셸 위가 2014년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10대 천재 소녀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셸 위는 남자 대회에 도전했다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AP=연합뉴스]

2004년 1월 17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 오픈 2라운드에서 만 14세 소녀가 2언더파를 기록했다. 골프계는 “남녀의 높은 성벽을 깨뜨릴 여자 골퍼가 나타났다”고 흥분했다. 주인공인 미셸 위는 당시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미셸 위(33)가 2일 개막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내년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US여자오픈에 한 번 더 나오기는 하지만, 이외의 출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미셸 위는 2014년 US여자오픈을 포함해 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뒀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의 천재성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남는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기록제조기였다. 만 12세이던 2002년 월요예선을 통과해 LPGA 투어 대회에 출전했다. 이듬해엔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셰브런 챔피언십)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경기했다. 역대 최연소 톱 10이었다. 그해 미셸 위는 US여자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에서도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미셸 위의 하이라이트는 세상을 놀라게 한 2004년 소니 오픈이었다. PGA 투어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소녀라는 훈장을 단 미셸 위는 이후 PGA 투어 등 성인 남자 대회에 잇따라 출전했다. 타이거 우즈와 미국 언론은 “여자 주니어 대회에 나가 골프를 즐기는 법을 배우고, 우승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미셸 위 측은 “어릴 때부터 남자 대회에 나가봐야 남자들과 겨룰 수 있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미셸 위는 어린 나이에 남자 프로골퍼들과 샷대결을 펼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10대 소녀는 몇 년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뒤에야 남자 대회 도전을 포기했다. 미셸 위가 그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난 건 대단한 일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다. 현재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2004년의 사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안니카 소렌스탐에 필적하는 최고 선수가 됐을 지도 모른다. 마스터스 우승은 어렵더라도 출전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때론 가장 좋을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기도 하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