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눈여겨 볼 일 군국화/방인철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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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시내 한복판 롯폰기(육본목)하면 맥주집ㆍ디스코장ㆍ양품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일본의 번영을 상징하는 곳이다.
29일 아침부터 이곳 분위기에 맞지않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2명의 시민이 어깨띠를 두르고 단식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초로의 이들 남녀시위자 주위를 경관 40명이 에워싸고 그만 하라느니,계속하겠다느니 승강이가 오가고 외국인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취재에 열심이다.
준비한 「호소문」을 통해 이들이 항의하는 것은 일 군국주의 부활이다.
『일본은 일찍이 「동양의 평화」를 대의명분으로 아시아를 범해 불태우고 3천만명의 생명을 빼앗은데 대해 전후결제도 하지 않은 채 아시아 제국과의 협의도 없이 미국에 동조해 해외파병을 서두르고 있다… 죄과를 그리 쉽게 갚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라크문제를 계기로 해외에 파병,명실공히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비약하려는 정치반동은 그대로 매국적 행위다… 물질생활의 충족을 대가로 나날이 진행되는 경제침략과 군사대국화를 묵과해온 일본 국민의 책임은 크다』
지방에서 상경해 단식까지 결행하는 이들이 정부와 국민에 경고하는 것은 일본의 「거짓과 위선」이다. 이같은 경종은 비단 이 두 노인네의 시위로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대학가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유엔평화협력법을 앞세운 일본의 군사대국화 기도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 경찰은 내달 12일 새 일왕즉위식을 앞두고 지난 주말부터 2만6천명의 경찰을 동원,삼엄한 경비를 펴고있다.
다이조사이(대상제)라는 왕실 전통의식을 통해 신이 된다는 헤이세이(평성) 국왕. 그의 즉위와 함께 일본도 새로 태어난다는 집단행사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1990년의 일본은 쇼와(소화) 일왕이 즉위한 1928년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한 일본 지식인은 귀띔한다.
그해 5월 일본은 중국 제남에 출병해 대륙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다.
일 지식인들의 지적처럼 일 군국주의 부활 또는 군사대국화가 이번 파병을 계기로 실제 시작되는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 정부 당국이 이같은 국면을 너무 쉽게 보아넘기고 있는게 아닌가 노파심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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