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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다…그래도 종전 전에 러 제재 완화, 말도 안 꺼낼 것" [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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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폭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 군사위기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 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초유의 단합 속에 대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고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현실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80여일을 맞아 이번 전쟁의 의미와 해결책을 찾고 한국과 유럽의 안보·경제 협력을 모색하고자 주한 유럽대사 4인을 순차 인터뷰했다. ①콜린 크룩스 영국대사 ②필립 르포르 프랑스대사 ③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대사 ④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EU 대사 순으로 소개한다.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가 18일 독일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가 18일 독일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 ③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

“국제법에 위반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고 길어질 이유도 없다. 독일을 비롯한 자유 진영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충족하지 않는 한 제재 완화를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주한독일대사관에서 만난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거짓말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라는 허위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문을 뗐다. 전쟁 직전까지 분쟁 억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독일은 침공 발발 후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포기 등 대러시아 제재 조치에서 단호한 입장으로 유럽의 단결을 이끌고 있다. 라이펜슈툴 대사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은 절대로 (지도자의) 정치적인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알려줘야 한다”면서 “대러 제재 참여국들에 많은 고통과 비용을 초래할 순 있지만 그럼에도 단결되게 밀고 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곧 전쟁 발발 3개월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는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명백한 거짓말이다.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에 대해 명확히 항의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2015년부터 나치 선전 및 상징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다. 러시아가 나치와 싸웠던 그들의 과거를 선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국제법을 위반한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과거 나치가 우크라이나 땅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만이 평화의 조건을 내걸 수 있기에 이 전쟁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다만 독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명분 없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한 지원을 이어갈 것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제재 완화를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가 18일 독일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가 18일 독일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유럽 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서 푸틴 역시 그걸 약한 고리로 봤을 텐데.

“러시아산 화석연료가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연대를 통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 석탄 수입량의 50%, 석유 수입량의 35%, 천연가스 수입량의 55%가 러시아산이었다. 꾸준히 대체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노력해 현재 러시아산 석탄과 석유 비중을 각각 8%와 12% 수준으로 줄였다. 천연가스의 경우 독일엔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이 없는 등 해외 수급 문제가 더 복잡하지만, 이 또한 전체의 35% 수준으로 감축했다. 같은 산업 국가이자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독일의 이런 행보가 경제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동반하는지 알 것이다. 장기 계획이 필요한 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지난 1973년 오일쇼크와 비견되는 변화라고 평가한다. 탈원전 정책을 비롯해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분쟁지역 무기 지원까지 하는 등 독일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숄츠 총리가 표현했듯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시대의 전환’이자 유럽 안보와 국제사회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분쟁 지역에 늘 하던 인도적 지원 외에 우크라이나에는 처음으로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를 독일 국민 대부분이 지지했다. 방위 강화 차원에서 독일 연방방위군에 1000억 유로(약 133조 5180억원) 투입도 결정했다. 지난해 말 숄츠 총리의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연립정부(연정) 계약서에 처음으로 ‘국가안보전략’이라는 단어가 명기됐고 현재 전략 수립 중이다. 당연히 러시아의 침공이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의 방어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 평화질서 유지도 중요하다. 갈등 예방을 같이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 해군 장병들이 부산을 방문한 독일 해군 프리깃함(호위함) 바이에른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주한독일대사관]

지난해 12월 한국 해군 장병들이 부산을 방문한 독일 해군 프리깃함(호위함) 바이에른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주한독일대사관]

2020년 인도‧태평양 정책 가이드라인 발표도 그 같은 인식의 연장 선상인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규범에 입각한 국제 질서가 지켜지는 게 중요해진 상황이다. 일례로 지난해 말 부산항에 입항했던 독일 연방방위군 프리깃함(호위함) 바이에른은 대북제재 감시 임무를 수행했다. 독일은 남중국해에서도 해양법에 관한 유엔조약(UNCLOS)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지녔다. 이를 위해 이 지역에서 실제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또 가이드라인은 군사적인 것 외에 많은 것을 포괄한다. 숄츠 정부의 연립정권 협약은 한국 등을 ‘중요한 가치 파트너’로 지칭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은 모두 제조업 강국으로 기술 혁신과 경쟁력 유지가 관건인 만큼 안보 외에도 기후·산업·학술 등 많은 분야에서 관계를 증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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