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 넘은건 DJ때 장상·장대환뿐…커지는 '한덕수 불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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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가 4월 3일 지명 이후 42일째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10일 ‘1호 결재’로 한덕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서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인준 부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11일 박진 외교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등 청문 보고서가 채택 안된 장관들의 임명을 강행하자 야당 내 '한덕수 불가론'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는 다른 장관과 달리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없고,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재적 의원(300명)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168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힘(109석)을 완력으로 누르고 ‘한덕수 카드’를 뒤집을 수 있다.

 한덕수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국회 본회의에서 참여 의원 270명 중 210명의 찬성표를 얻어 무난하게 총리로 임명됐다. 사진은 2005년 3월 15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덕수 당시 재경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덕수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국회 본회의에서 참여 의원 270명 중 210명의 찬성표를 얻어 무난하게 총리로 임명됐다. 사진은 2005년 3월 15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덕수 당시 재경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만 해도 270명 중 210명의 찬성표를 얻어 무난하게 총리로 임명됐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둔 특수 상황이었다. 여야가 아니라 FTA 찬성파와 반대파로 국회가 갈렸다. 이 때문에 FTA에 찬성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대부분 한 후보자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 국면은 전혀 다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를 두고 거칠게 충돌한 여야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의석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에 역대 어느 총리 인준 때보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가 2001년 3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김대중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가 2001년 3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6월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첫 국회 표결을 거친 이는 김대중 정부의 이한동 총리였다. 재석 의원 272명 중 139명이 찬성(51.1%)해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당시에도 여소야대 구도였지만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과반이 아니었고 새천년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으로 의석 차이가 크지 않았다. 여당이 무소속과 군소 정당 의원을 포섭하면 통과가 충분히 가능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고건(246명 중 163명 찬성), 이해찬(289명 중 200명 찬성), 한명숙(264명 중 182명 찬성), 한덕수 총리가 무난하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총리인 정운찬 총리는 사상 처음으로 야당의 표결 불참을 뚫고 임명됐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불참했지만,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무소속 의원 177명이 참여해 16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홍원 총리(272명 중 197명 찬성)에 이어 이완구 총리가 281명 중 148명의 찬성(52.7%)을 얻어 턱걸이로 표결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이름이 올라 63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2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5년 6월 8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청문회 속개 전 청문회장을 찾은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화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2015년 6월 8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청문회 속개 전 청문회장을 찾은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화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이 총리의 뒤를 이은 황교안 총리 인준안은 278명 중 156명의 찬성표를 얻어 통과됐다. 당시 표결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이 정확히 156명이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이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와 통화를 돌리고, 투표 당일 총동원령까지 내리는 등 적극적으로 ‘표 단속’을 펼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총리 인준안이 가결됐다. 문 정부 초대 총리인 이낙연 총리 표결 때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하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188명 중 164명이 찬성했다. 김부겸 총리 표결 때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 속에 176명 중 168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2002년 진행된 장상 국무총리서리 인사청문회. 중앙포토

2002년 진행된 장상 국무총리서리 인사청문회. 중앙포토

역대 국무총리 후보자 중 자진 사퇴 등 중도 낙마를 제외하고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된 사례는 2002년 김대중 정부의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둘 뿐이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란을 빚은 장상 후보자 인준안은 244명 중 142명이 반대해 부결됐다. 약 한 달 뒤 장대환 후보자도 탈세, 위장 전입 논란 끝에 266명 중 151명의 반대로 쓴잔을 마셨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 공백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청문특위 위원들은 12일 “민주당은 다른 장관 후보자의 낙마를 한덕수 후보자 인준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는 ‘공직자 끼워팔기’”라며 인준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한 후보자의 인준안을 부결하면 모든 국정 파행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경우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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