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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빡깜빡' 검정고시 만점 기적…팔다리 마비 이겨낸 수찬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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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수찬씨. [사진 충북교육청]

2022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수찬씨. [사진 충북교육청]

24시간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30대 중증장애인이 초·중졸 검정고시에 이어 고졸 검정고시를 만점으로 합격했다.

10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옥천군 옥천읍에 사는 이수찬(33)씨가 지난달 9일 치른 2022년 제1회 고졸 검정고시에서 만점 합격했다. 이씨는 2020년 응시한 초졸 검정고시와 지난해 치른 중졸 검정고시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지체장애 1급인 이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근육이 무너지는 ‘근이영양증’을 진단받았다. 이듬해 다리가 휘어지고, 팔이 서서히 마비되는 등 증상이 악화했다. 지금은 자가 호흡이 어려워 산소호흡기를 껴야 한다. 어머니 최선미(58)씨는 “수찬이가 10살 무렵 서 있지도 못하고, 팔과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서만 생활해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혼자서는 거동이 힘들 정도로 사지가 불편하다. 대부분 침대에 누워서 생활한다. 밖에 나갈 땐 침대형 휠체어를 사용한다. 컴퓨터 자판을 조작할 수가 없어서, 무선 마우스로 화상 자판을 누르는 식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1998년 학업을 중단한 그는 특별한 목표 없이 온종일 TV를 보거나,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했다. 이씨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한 초등학교를 찾으면서 검정고시 도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투표 장소인 학교에 들렀을 때 학생들이 사용하는 의자와 책상을 보며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다”며 “몸은 불편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전경

충북교육청 전경

이씨는 장애인 야학인 ‘해 뜨는 학교’를 통해 검정고시를 접하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독학으로 공부했다. 어머니와 옥천장애인자립센터 활동보조 도우미가 책을 넘기면, 노트 필기를 할 수 없는 이씨는 눈으로만 보고 암기했다. 이씨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인터넷 강의를 여러 번 돌려봤다. 공부한 내용을 잊어버려 몇 번씩 다시 암기했다”며 “체력 관리를 위해 하루 4시간씩 꾸준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고졸 검정고시는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 등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등 7과목을 치른다. 과목당 시험 시간은 40분이다. 이씨는 “수학과 영어는 일반인과 달리 종이에 적어서 연습할 수 없어서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김은경 고시관리팀 담당은 “대독·대필하면 시험 시간을 각 과목당 10분 연장하는데 수찬 씨는 시험시간 연장 없이 눈으로만 문제를 풀어 만점을 맞았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옥천장애인자립센터에 수기 글을 쓰고 신문기사 스크랩 일을 도와주며 장애인 인권개선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대학에 진학해 법학 공부를 이어가 장애인 인권개선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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