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에 『한국 어머니 상』심어-LA서 서예 등 전시회 마련 선학회 주영숙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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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인들에게 한국 어머니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찾아 전시회를 연 할머니가 있다. 지난 17∼18일 중앙일보 미국 로스앤젤레스지사 전시실에서 가진 선학회 작품전의 산파역을 맡은 주영숙 여사(83·선학회장)가 바로 그 주인공.
「공부하는 어머니, 생각하는 아내, 노력하는 나」를 목표로 각기 한가지의 예술적 기량을 닦아 가는 주부들의 모임인 선학회의「정신적 지주」로 32명 회원들로부터 종신회장을 위임받았다.
뉴욕에 있는 국제 수공예 협회의 초청을 받고「한국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회원들을 이끌고 먼 해외 나들이를 결심했던 주 여사는『한글서예·한문서예·자수·한복·그림 등 89점의 출품작이 관람객들로부터「아마추어를 벗어난 수준급」으로 호평받았다』고 무척 흡족해 한다.
이번 LA전에 그가 출품했던 것은 초서로 쓴 한문서예 5점.『옥부탁이부성기 인불학이부지도』(옥도 갈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등 그가 평소 생활 철학으로 삼고 있는 글귀들을 선보였다.
주 여사가 붓을 잡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 6·25전쟁당시 부장 판사이던 남편(박원삼씨·당시 48세)이 인민군에게 납치 당하자 1남2녀의 자식을 혼자 키워왔던 그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아들이 5·16이후 2년간 소식이 두절되자「미칠 것 같은 심정」을 달래기 위해 가야금을 시작했다.『낮에는 식구들을 벌어 먹이느라 정신이 없어 모르고 지나가다가도 한잠 자고 일어나면 시름을 달래기 어려웠다』는 그는『남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한밤중에 가야금을 켜게 되니 딸도 싫어하고 이웃에도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붓글씨를 배우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서예가 원곡 김기승씨의 문하생이 돼 기본 서체를 익히기 시작한 그는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이 되면 일어나 먼동이 터 올 무렵인 오전5시까지 꼬박 붓에 매달린채 지내왔다.
이같은 그의 노력으로 국전을 비롯한 공모전에 서너 차례 입선했고 69년 대한 주부 클럽연합회가 처음 실시한 신사임당상 주부 기능대 회에서 서예부문 장원을 차지했다. 71년 주부 클럽 안에 묵향회를 조직, 한글서예·한문서예·사군자 부문의 특기를 가진 주부들과 활동해오다 83년 선학회를 창립했다.
「주부들이 기량을 닦는 것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하나」임을 강조하는 그는 미수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하루 두시간씩 붓을 쥐어 무념 무상의 세계에 빠져들곤 한다.
집에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남편들이 「엄마가 공부하니까 조용히 해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식사준비까지 한답니다. 밖에 나가 구호만을 외쳐대는 것보다 이렇게 안에서 내실을 다져 가는 것이 진짜 여성들의 인권신장이라고 생각해요.』
시간 날 때 마다 회원들에게「주부들의 됨됨이」를 일러주어「회장님」대신「할머니」로 불리는 그는 망부의 정을 담은『내 마음, 네 마음』이란 수필집을 팔순에 펴내기도 했다. 또 이번 미국 여행 중 느낀 소감을 묶은 채도 내년에 발간할 계획이다.<로스앤젤레스=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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