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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올리면서 30조원대 추경 돈풀기…재정·통화 엇박자

중앙일보

입력

‘한쪽에선 30조원 넘는 돈을 풀고, 한쪽에선 금리를 올리고’. 윤석열 경제팀을 함께 이끌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출발선에서부터 엇갈린 방향에 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0일 오후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0일 오후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종합 패키지’를 오는 25일 발표한다. 이를 뒷받침할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규모도 함께 확정한다. 지난 21일 홍경희 인수위 부대변인은 “코로나 손실보상 종합 패키지에 담길 여러 시뮬레이션 방안 중 구체적인 보상 규모, 지급 대상, 지급 방식에 대한 결론에 접근했다”며 “정부가 여러 차례 보완 작업을 통해 추계한 손실 규모를 바탕으로 다음 주 최종 검토를 통해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 규모는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에서 30조원대로 줄어든다. 재원 마련의 어려움, 금리ㆍ물가 부담 등 이유로 인수위 내부 논의 과정에서 축소됐다. 이미 집행한 올 1차 추경(16조9000억원)에 이어 30조원 2차 추경을 더하면 윤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에 얼추 맞는다는 계산도 자리한다.

금액이 줄었지만 대규모 추경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역대 최대였던 2020년 3차 추경(35조1000억원)과 맞먹는다. 30조원 넘는 돈이 5~6월 이후 추가로 풀리면 이미 치솟은 금리ㆍ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 30조원 추경 재원 중 절반가량은 나랏빚을 내(적자 국채 추가 발행) 마련해야 하는 터라 시장 부담도 크다.

예산 집행 주무부처인 기재부 앞에 닥친 난제다. 다음 달 초 예정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추경 편성 적절성과 국가채무 관리 방안에 대한 질의가 집중될 전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스1

30조원 돈 풀기를 예고한 새 정부와 달리 한은은 시장에 꾸준히 ‘긴축’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신임 총재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이 앞으로 1~2년은 계속될 것”이라며 “인기는 없더라도 (금리 인상)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 더 이상 부채가 늘어나는 건 국민 경제 전체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14일 총재가 공석인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올렸을 만큼 한은은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총재 언급처럼 연내 추가 금리 인상도 기정사실이다. 물가 상승 속도가 잦아들지 않는다면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이 따라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2014년 이후 8년 만에 기준금리 연 2%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2분기(4~6월)에도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5월 발표될 4월 소비자물가가 크게 높아진다면 연속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은 재차 확대될 수 있다”며 “한은도 물가를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도 긴축 속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풀어놓은 과잉 유동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물려 ‘하이퍼 인플레이션(초고물가)’을 유발하고 있어서다.

21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좀 더 빨리(a little more quickly) 움직이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며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50bp(0.5%포인트) 인상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0.25%포인트 인상이 아닌 ‘빅스텝’을 예고했다.

역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은에선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새 정부는 빚까지 내서 30조원대 추가로 지출할 예정이라 통화ㆍ재정 정책 ‘엇박자’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사를 중심으로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이날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2’,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지난 2년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격히 국가채무가 늘어났고, 앞으로도 높은 수준을 지속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가계대출은 최근 10년 동안 배 이상 증가했는데, 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106.5%는 부채 비율이 최고 수준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21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측이 6월 새 정부와 추경 관련 정책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정부 지출 확대와 이에 따른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국제신용평가사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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