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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제는 러 화학무기" NYT가 떠올린 10년전 오바마 악몽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뉴욕타임스(NYT)가 미국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칼럼을 실었다. 과거 시리아 내전에서 확전을 우려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사태 악화를 이끌었던 선례가 있다면서다.

버락 오바마(왼쪽)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16년 12월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왼쪽)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16년 12월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NYT의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푸틴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어떡해야 할까’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러시아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려 한다는 정황이 제시되고 있고, 마리우폴에선 이미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스티븐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 시리아 내전을 통해 ‘이미 걸었던 길’이며,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대처를 답습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규정했지만, 이듬해 8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다마스쿠스에 사린가스 공격을 해 수백 명이 사망한 후에도 적극적인 군사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이후 알아사드 정권은 서방의 경고에 못 이겨 2013년 9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하고도 수년간 화학무기 사용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화학 무기 전문가인 하미쉬 드 브레튼 고든은 “당시 시리아에서 오바마의 ‘레드 라인’이 무너지면서 모든 독재자와 불량 국가들이 화학무기 사용을 고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에게 서방이 약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도 “이런 결정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결정한 푸틴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던 러시아는 2015년 파병을 통해 시리아 내전 개입을 공식화했다.

지난 2018년 4월 7일(현지시간)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 후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는 어린이들의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8년 4월 7일(현지시간)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 후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는 어린이들의 모습. [AP=뉴시스]

"최악의 사태 일어날 수도…강력한 경제·군사 대책 마련해야"

스티븐스의 칼럼은 “더는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무너져선 안 된다”며 이를 위해 러시아에 대한 강화된 경제‧군사적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선 러시아 경제의 모든 부문을 규제해 공급망을 무너뜨려야 하며, 특히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도록 최대한의 외교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하루에 수입하는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가 10억 달러(1조 2280억 원)에 달한다는 추정치가 있다면서다. 또 푸틴 대통령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도 함께 겨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군사적으로도 방어용 무기를 넘어 미그-29(MIG-29) 전투기 등 공격용 무기 지원에 나서야 하며, 전쟁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최소 1년 이상의 무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우크라이나전(戰) 총괄 사령관으로 임명된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60) 러시아 남부 군관구 사령관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끔찍한 공격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한다”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다. 드보르니코프 사령관은 지난 2015년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당시 초대 사령관을 지내며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포격과 폭격을 주도한 인물이다.

친러시아 반군 소속 병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 공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친러시아 반군 소속 병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 공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에선 러시아군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에 관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러시아의 화학무기 사용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아직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11일 마리우폴을 방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아조우 연대’는 러시아 드론이 군대와 민간인들에게 독성 물질을 투하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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