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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준비 시대의 경제논리/김두겸(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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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변화무상」이란 말이 요즘처럼 실감있게 들리는 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동구제국의 붕괴가 엊그제 일 같고 독일통일이 바로 어제의 일인데 오늘 이땅에선 40년 이상 적대 관계에 있던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텄고 한중 관계도 무역사무소 설치 등으로 사실상 정상화되고 있다.
특히 남북한 관계의 변화는 변화무상을 넘어 온 국민을 들뜨게 만들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사진 한장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김일성의 얼굴은 물론 그와의 악수장면마저 생생히 방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총리가 그를 주석각하라고 아무 거리낌없이 불러도 형무소엘 가지 않고 그의 육성이 안방 TV를 통해 전국민이 들을 수 있도록 해도 이적행위가 되지 않는다. 통일이 정말 아주 가까운 거리에까지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우리의 지상과제가 통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을 위해 이미 두 차례의 총리회담이 열렸고 서울ㆍ평양을 오가는 통일축구대회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멀고 험난한 통일작업을 위한 워밍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워밍업의 1차 목표는 남북정상회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회담에서 평화협정이든 불가침선언이든 간에 남북이 공존하는 어떤 형태의 협정이라도 체결된다면 그 다음 수순은 자연 명백해진다. 남북관계는 바로 45년간에 걸친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1국2체제의 선의의 경쟁관계가 전개된다고 봐야 한다. 그 경쟁이란 다름 아닌 「국민 잘살게 해주는 경쟁」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져 한반도에도 대치가 아닌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최종목표인 통일을 위해 정치ㆍ경제ㆍ문화ㆍ스포츠 등 다방면에 걸친 통일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남북교류는 이데올로기가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각기 자기 체제의 결점이나 또는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는 선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는 현재의 두 체제 중 어느 쪽이 더 경제력을 빨리 증강시킬 수 있느냐,그리고 어떤 체제가 더 국민을 잘 살게 해주느냐 하는 체제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데는 「동구의 붕괴」가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자유ㆍ평등ㆍ박애를 슬로건으로 내건 프랑스혁명 이후 세계는 자유를 더 중시하는 진영과 평등을 더 강조하는 진영으로 양분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유와 평등은 본래 양립되기 어려운 것. 자유는 곧 불평등을 의미하며 평등은 바로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를 강조한 대표적인 국가는 물론 미국과 영국이다. 영국에선 너무 자유를 중시한 나머지 빈부의 차가 현격했고 마르크스는 여기에 분노하여 자본론을 펴낸 바 있다. 미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자유를 찾아 대륙으로 간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반면 평등에 치중한 쪽은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 사람은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발상은 경제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바탕에 깔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그 질과는 관계없이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의 양이 문제이지,질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자세다.
마르크스주의 신봉사회에서 비즈니스가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상품이란 개념도 자유진영의 그것과는 다르다. 상품이 없으니 수출할 것도 없다. 자연 그들이 수출하는 것이라고는 자연자원과 무기뿐이다. 무기란 코스트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상품이라고도 볼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경제적 번영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자유주의 사회는 이것과는 정반대인 치열한 경쟁사회다. 자유롭게 경쟁하여 이기는 자가 살아남고 번영을 누린다.
비즈니스는 이런 토양위에서만 번창한다. 비즈니스란 판단을 잘못하면 반드시 파멸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곳은 노동가치설이 아니라 「판단가치설」이 말을 하는 세계다. 자유주의 사회가 번창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비즈니스 감각을 소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자유주의 국가라고 해서 평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의 결점을 보완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서커스에서는 반드시 안전그물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기회만큼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비록 결과의 평등론이긴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의 최대의 결점인 낙오자의 구제를 위해 「최저생활보장」은 잘 장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구의 붕괴는 평등만을 강조하는 사회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경제경쟁시대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논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이제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다짐할 때가 온 것 같다.<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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