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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규의 퍼스펙티브

스웨덴 총리, 퇴임 후 돌아갈 집조차 없을 만큼 청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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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호화 관저 논란과 스웨덴의 정보공개제도

이정규 전 주스웨덴 대사, 세명대 초빙교수

이정규 전 주스웨덴 대사, 세명대 초빙교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개방하고 ‘용산 시대’를 열기로 하면서 권력기관의 대규모 호화 관저(공관)가 최근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는 주요 권력 기관장들이 사용하는 넓고 화려한 공관이 즐비하다. 물론 이 공관들은 외국 귀빈을 접대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여타 공적인 행사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빈도에 비해 유지 비용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공익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단순히 기관장 가족의 살림집 용도로 전용되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관례가 아니라 제로베이스로 따져 보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정리하는 방안을 이제는 내놔야 한다.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 계기로 권력기관장들의 호화 공관 도마에
스웨덴, 모든 공적인 행위의 과정·결과 즉시 공개하는 정보공개법 시행
한국도 투명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기존 관행과 과감하게 단절해야

대통령집무실과 관저의 청와대 시대 마감을 계기로 주요 권력 기관장들의 넓고 호화로운 관사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감사원장 공관. [중앙포토]

대통령집무실과 관저의 청와대 시대 마감을 계기로 주요 권력 기관장들의 넓고 호화로운 관사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감사원장 공관. [중앙포토]

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25만㎡나 되는 광활한 기존 청와대 공간은 국민에게 개방한다니 기쁜 소식이다. 아무쪼록 기획 단계부터 실제 이전까지 모든 절차와 과정에서 용도와 비용을 꼼꼼하게 따져서 최대한 절약하고 세금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비용 사용 내역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길 바란다. 예산 사용 내역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공약하고 이전을 추진한다면 신뢰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한남동에 있는 주요 기관장 공관들도 이번 기회에 비용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 좋겠다. 용도와 가성비를 잘 따져서 활용도가 낮은 호화 공관이 깔고 앉은 넓은 땅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강원도지사 공관. [중앙포토]

강원도지사 공관. [중앙포토]

아울러 정부와 국회 등 공공기관의 특별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 그동안 사용의 적절성에 대한 궁금증과 불신이 제기된 예산도 사용 결과를 국민이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공개하면 좋겠다. 비공개 허용 범위를 필요 최소한으로 과감하게 축소하는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타게 에를란데르

타게 에를란데르

한국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권력기관장의 호화 공관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지금도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한 정치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당수를 역임한 타게 에를란데르(1901~1985) 전 총리다.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로 재임한 그의 청렴성을 보여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에를란데르 총리가 별세한 뒤 부인이 집에서 남편의 짐을 정리하던 중 정부 마크가 새겨진 펜을 발견하고 총리실에 찾아가 반납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퇴임 대통령의 호화 사저가 매번 입방아에 오르지만, 스웨덴은 딴 나라 이야기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재임 중에는 스톡홀름 시내 관공서 밀집 지역의 작은 공관에 거주했으나, 퇴임할 때는 돌아갈 개인 집조차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스웨덴 국민이 살 집을 마련해 줬다고 한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의 청렴성은 국민을 감동하게 하고 국민이 정치인을 존경하고 신뢰하게 한다.

경북도지사 공관. [연합뉴스]

경북도지사 공관. [연합뉴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스웨덴은 매년 세계 3~4위에 오를 정도로 청렴도가 매우 높다. 모든 공적인 행위는 과정과 결과가 공개돼야 한다는 정보 접근에 대한 원칙이 확고한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는 공직자가 공무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국민은 공직자가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권리가 있고 동시에 정부 기관과 공직자는 이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검소하고 겸손하다.” 스웨덴 국민이 스웨덴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이자, 국민의 눈에 비친 스웨덴 정치인의 이미지다. 스웨덴 정치인들은 “권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권력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왜냐하면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에 있고 국민을 섬기는 것이 정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권력에 대한 감시가 가능한 것은 정보공개제도 덕분이다. 국민이면 누구나 의원들의 씀씀이에 대해 의회에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고, 의회는  군더더기도 핑계도 없이 매우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필자가 주스웨덴 대사로 근무하던 2018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의원에게 스웨덴 공직자들은 어떻게 높은 청렴성을 유지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스웨덴에서 정치인은 공적인 행위에서는 어항 속 금붕어같이 국민이 일거수일투족을 있는 그대로 다 들여다보고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일일이 영수증을 직접 정리·정산해 의회 사무처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만약 출장 중에 주최 측으로부터 식사를 한번이라도 제공받았으면 그만큼을 지출에서 공제하고 정산한 다음 남은 여비는 반납한다고 했다. 의원이 최종 보고한 회계 정산 서류는 누구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보관하니 부정부패는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제도는 부정부패를 막는 지름길이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제도를 채택한 나라다.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인 1766년 정보공개제도를 법제화했다. 스웨덴 제도의 특징은 헌법으로 이 제도를 보장하는 점이다. 스웨덴 헌법의 일부를 구성하는 ‘출판 자유 기본법’에 “모든 국민은 이 법에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출판 또는 정보 전달을 위해 어떠한 주제에 관한 정보라도 획득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정보에 대한 접근권, 정보공개청구권도 기본권으로 헌법이 보장한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지 정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고 정부는 지체 없이 공개해야 한다. 정보공개제도의 핵심 요소는 정보공개의 대상에 예외가 가능한 한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외가 있으면 있을수록 빠져나갈 구멍과 핑곗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엄격한 정보 공개 제도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국민과 언론의 감시는 부정부패를 없애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스웨덴에서는 공직자가 국민의 세금을 작은 액수라도 사적인 용도로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유망 정치인이던 모나 살린 부총리는 공휴일에 공원에 나갔다가 아이들에게 줄 초콜릿 2개를 무심코 법인카드로 지불해 망신을 당했다. 사적 목적의 법인카드 사용이 의도된 행위가 아니라 실수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결국 공직에서 물러났다. 모나 살린 스캔들이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중앙과 지방정부를 불문하고 모든 정보를 납세자인 국민에게 공개해야 하는 스웨덴의 정보공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도 정보공개제도가 법제화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비공개 처리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고 정보공개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 스웨덴과 다르다. 한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9조 1항에 국가안보·국방·통일· 외교 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 8개 세항에 걸쳐 비공개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만든 예외 규정 때문에 실제로 정보공개 청구로 공개되는 정보의 범위는 매우 작다. 물론 스웨덴에서 모든 서류가 무조건 공개 대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의사들이 기록한 개인에 대한 병역기록부나 경찰의 개인 조서 같은 개인의 민감한 사항은 개인의 비밀에 관한 법으로 명확히 구분해 보호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 공개에 소요되는 시간도 너무 길다. 정보공개법 제11조에 공공기관은 정보공개를 청구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스웨덴은 ‘즉시 공개’를 규정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과부족이 없는 적당한 만큼을 의미하는 라곰(lagom)의 삶을 추구한다. 라곰이라는 말의 유래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이킹 시대로 올라간다. 뿔로 만든 공용 술잔에 술을 가득 담아 건네면 “구성원 모두를 위하여(laget om)”라고 외친다. 다른 사람들도 마실 수 있도록 한 모금만 마시고 옆 사람에게 잔을 넘긴 풍습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라곰이라는 말은 양뿐만 아니라 가치도 의미한다. ‘적당히’라는 철학은 절제와 균형감으로 해석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당한 만큼을 추구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직한 사회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투명한 사회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약 한 달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우리가 모두 꿈꾸는 새로운 나라는 국민이 공직자를 신뢰하고 공직자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정직하게 행동하는 국가다. 권력기관의 호화 청사와 공관 문제든 특별활동비나 업무추진비, 그리고 법인카드 사용 문제든 그동안 청산하지 못했던 악습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란다.

이정규 전 주스웨덴 대사, 세명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