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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검사장 "검찰 수사권 폐지는 곧 국민 피해…국회 특위서 숙의해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 18개 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이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검사장 회의를 갖고 더불어민주당이 4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추진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공식 반대 입장을 내놨다. 전국 검사장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워가며 약 7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벌인 끝에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성급히 추진하지 말고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각계 전문가와 국민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형사사법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전국 지방검찰청 검사장 회의가 열린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검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전국 지방검찰청 검사장 회의가 열린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검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검사장들은 이날 회의 직후 전국 지검장 중 최선임인 김후곤(57·사법연수원 25기) 대구지검장의 브리핑을 통해 “일선청을 지휘하는 지검장들은 2021년 1월 형사사법제도 개편 이후 범죄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진실규명과 사건처리의 지연으로 국민들께서 혼란과 불편을 겪는 등 문제점들을 절감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고 충분한 논의나 구체적 대안도 없이 검찰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이 성급히 추진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검사장들은 “검찰의 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게 되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직접 청취할 수 없는 등 사법정의와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게 된다”며 “지검장들은 국민을 위하여 국회에서 가칭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검찰 수사 기능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제반 쟁점에 대해 각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형사사법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 스스로도 겸허한 자세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김 지검장과 일문일답.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검찰의 반대에도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여러 방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한 번 법이 바뀌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쯤 검사장들이 의견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주당에선 입법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집단 반발로 보여지는 건 경계해야겠지만, 국회 입법권에 대해 아무 말도 말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법 과정의 절차적 문제나 내용의 문제점은 국민에 알려야 한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검찰이 반성할 건 있다. 하지만 당장 수사권을 폐지한다는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금 논하는 게 맞느냐는 게 검사장들의 주된 생각이었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전국 지검장 총사퇴도 고려하나. 
“대부분의 검사장들도 총장과 같이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일치된 의견이 있었다. 다만, 국회가 형사사법제도의 각 축인 법원·대한변호사협회·검찰·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도 수사권 폐지를 추진한다면 검찰이 물러서야 하지 않을까.”
이견은 없었나.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충돌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전원 일치된 결론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김오수 총장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김 총장은 이날까지 전국 평검사·지검장·고검장 회의를 거쳐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 만큼 국회를 직접 찾아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회의에 참석한 한 지검장은 “김 총장이 (자신의 거취에 관해) 모두발언에서 용퇴 의사를 밝힌 만큼 더 압박하는 분위기는 없었다”며 “아직 한 정당의 내부 논의 과정인 만큼 국민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전국 검사장들이 모두 모여 총의를 모은 건 2020년 7월 3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채널A 사건 지휘권을 배제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데 대해 재고 요청 의견을 모은 뒤 처음이다. 주말 사이에도 검찰 내부 분위기는 한층 들끓었다. 구자현(49·29기) 검찰국장 이하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 반대 의견을 전달하는 한편, 서울중앙지검·대전지검·청주지검·제주지검·성남지청·안산지청 소속 간부·평검사와 서울북부지검·광주지검·의정부지검 소속 평검사들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를 통해 ‘검수완박’ 반대 성명을 냈다.

주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을 지낸 황우진(47·32기) 대구서부지청 형사1부장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관련해 “유엔에서 전 세계 외교관들과 국제형사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면서 한 번도 국제사법기구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만약 이것도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에만 있는 ‘K-사법제도’라면, 단 한번만이라도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재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주재한 전국 지검장 회의에선 검찰 수사권 폐지 논의에 관해 국회에 특위를 구성, 숙의를 촉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주재한 전국 지검장 회의에선 검찰 수사권 폐지 논의에 관해 국회에 특위를 구성, 숙의를 촉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뉴스1

변호사단체도 검찰 수사권 폐지를 추진하는 민주당에 대한 규탄 성명을 잇달아 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정권비리, 권력비리를 수사하지 못하게 막는 이른바 ‘검수완박’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이라고 비판했고,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검찰 수사권 폐지는 공소권도 불구로 만들어 국가의 범죄처단 기능을 크게 손상시킬 것이고, 국가를 공격하는 범죄도 방어할 수 없게 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이것은 헌법파괴 책동이어서, 결코 정당한 입법권 행사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권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3선 의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좋은 수사, 공정성 있는 수사에 대해서 왜 일사불란하게 목소리를 내고 대응하지 않는지 의문”이라며 자신이 지휘·감독하는 검찰을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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