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드라이브 마이 카'의 두 남자는 어떤 위스키를 마셨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2.04.07 00:06

정인성의 〈영화로운 술책〉
여러분은 술에 무엇을 곁들이시나요. 맛있는 안주, 아니면 신나는 음악? 혹시 소설과 영화는 어떠세요?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술을 마시는 시간은 색다른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술 마시는 바와 심야서점이 더해진 공간, ‘책바(Chaeg Bar)’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죠. 책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등장인물의 심리, 장면의 분위기, 상황의 메시지를 전달하곤 합니다. 책과 영화 그리고 술을 사랑하는 정인성 대표가 맛있는 술과 가슴속에 깊이 남을 명작을 함께 추천해 드립니다.

심야 서점 컨셉의 '책바'에서는 책과 술을 같이 즐길 수 있다. 사진 정인성

심야 서점 컨셉의 '책바'에서는 책과 술을 같이 즐길 수 있다. 사진 정인성

내가 운영하는 ‘책바’에서는 마감 전에 신청곡을 받는다. 이 시스템은 손님의 취향이 담긴 좋은 음악을 발견하는 기회이자, 동시에 이들이 기분 좋게 공간을 나서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누군가와 함께 듣는 경험은 소중한 사람이든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든 관계없이 특별하니까.

한가하던 어느 평일 밤, 바 끝에 앉은 남자 손님이 쓴 신청곡 리스트에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이시바시 에이코(石橋英子, Eiko Ishibashi)의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가 적혀있었다. 손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책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 혼자 방문한 남자가 읽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기본 안주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공간을 잔잔히 울리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곡을 들으며, 한밤중에 주황색 불빛으로 가득한 터널을 달리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예매했다. 잠들기 전에는 영화를 상상하며, 영화의 원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있는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영화 애호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씨네필(Cinephile) 사이에서 '명씨네'라고 불리는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는 관객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그야말로 영화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자, 독립영화 전용관의 묘미다. 세 시간이라는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크레딧 도중에 나온 건 약속 시간이 빠듯했던 내가 유일했다.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2초 정도 신경 썼던 것 같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얼마 전 열린 2022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손님이 노래를 신청할 당시에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고 칸에서 상을 받은 줄도 몰랐다. 팬데믹으로 인해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관심사에 대한 채도가 옅어진 것일까. 신청곡을 듣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보는 일도 책을 다시 읽는 일도 없었을 것 같다.

책과 영화는 세부적인 스토리가 다르지만 두 남자의 상실을 다룬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한 남자는 아내를, 한 남자는 내연녀를 잃었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깊이 사랑했던 한 명의 여자를 그리워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주인공 가후쿠는 연극배우다.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을 알지만 마치 연기하듯 괜찮은 척하며 사는 인물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가후쿠는 아내의 불륜 상대였던 다카쓰키에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다.

반대로 영화에서는 다카쓰키가 주인공 가후쿠에게 만남을 제안한다. 누가 먼저 제안했든, 둘의 사적인 만남은 이뤄진다. 장소는 내밀한 대화가 오고 가는 ‘바(bar)’다. 두 사람은 긴자의 어느 바와 아오야마의 네즈미술관 뒤편에 있는 바(하루키가 좋아하는 바인 ‘라디오(Radio)’를 염두에 두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에서 만나 술을 마신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중 바(bar)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후쿠와 다카쓰키의 모습.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중 바(bar)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후쿠와 다카쓰키의 모습.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바의 조용한 박스석에서 몰트위스키 잔을 기울이며 가후쿠는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다카쓰키의 마음이 아직도 아내에게 깊이 빠져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 p.42

한 여자를 그리워하는 두 남자는 바에서 어떤 술을 마셨을까? 다카쓰키는 어쩌다 맥주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싱글몰트를 주로 마시는 사람이다. 아마 가후쿠는 상대의 취향을 고려해 몰트위스키를 주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두 남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두 회사가 있다. 바로 ‘산토리(Suntory)’와 ‘닛카(Nikka)’다.

산토리를 대표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 12년. 사진 suntorywhisky 인스타그램 캡처

산토리를 대표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 12년. 사진 suntorywhisky 인스타그램 캡처

산토리와 닛카는 일본 싱글몰트위스키의 양대산맥인 회사다. 산토리를 대표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야마자키(山崎)와 하쿠슈(白州)가 있고, 닛카에는 요이치(余市)와 미야기쿄(宮城峡)라는 싱글몰트가 있다. 위스키 이름은 각 증류소가 있는 동네에서 가져왔으며,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됐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다.

타케츠루는 히로시마의 양조장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사카고등공업학교(현 오사카대학교) 양조학과에서 공부했다. 이후에 당시 가장 잘나가던 오사카의 양주제조 셋츠주조에 입사했는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사장이 스코틀랜드 유학을 권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인 1918년의 이야기다.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글래스고 대학에서 양조를 공부하고 글렌리벳 같은 유수의 증류소에서 일한 뒤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셋츠주조는 회사 사정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계획을 철수한다. 그후 코토부키야(훗날 산토리)의 대표인 토리이 신지로가 삼고초려까지 하며 타케츠루에게 일본만의 싱글몰트위스키를 만들 것을 요청한다. 당시 일본은 이름만 위스키인, 소위 가짜 위스키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산토리의 첫 증류소는 교토 근방의 야마자키에 세워졌다. 야마자키에 증류소를 세우는 건 토리이 신지로의 의사결정이었는데, 사실 타케츠루는 교토보다 스코틀랜드의 환경과 유사한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세우고 싶어 했다. 10년의 계약 기간이 지나고 독립한 타케츠루는 자신의 염원대로 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운다. 회사 이름은 ‘대일본과즙(大日本果汁株式会社)’이다. 이후 줄여서 ‘닛카(日果)’가 되었다. 이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한때 매출이 회사 이름처럼 과일주스를 통해 발생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산토리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타케츠루의 자서전인 『위스키와 나』에 따르면 토리이에게 존경을 표하고 원만하게 퇴사한 것으로 보이나,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과 달리 이들은 서로 원액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위스키, 닛카의 요이치 싱글몰트는 거친 풍미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사진 nikkawhiskyusa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위스키, 닛카의 요이치 싱글몰트는 거친 풍미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사진 nikkawhiskyusa 인스타그램 캡처

산토리와 닛카의 싱글몰트위스키는 풍미의 결이 서로 사뭇 다르다. 둘 다 스카치 스타일인 것은 맞지만, 닛카의 위스키가 산토리에 비해 조금 더 거칠고 ‘피트’의 풍미가 도드라진다. 반대로 부드러운 스타일을 선호하는 이들은 산토리의 야마자키와 하쿠슈를 찾는다. 피트란 습지 식물이 죽어서 썩은 땅속 퇴적층을 말한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은, 탄화가 덜 된 석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석탄이 부족해 피트를 태운 열로 몰트를 건조했다고 한다. 이때 피트의 비율에 따라 몰트의 훈연 풍미도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피트의 풍미를 좋아한다. 닛카의 위스키 중에서는 요이치 증류소에 방문했을 때 구매했던 ‘요이치 피티 앤드 솔티(PEATY&SALTY)’가 기억에 남는다. 책바에서 이 위스키를 맛본 사람들은 아일라(혹은 아일레이) 위스키보다 깔끔한 풍미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참고로, 아일라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서쪽 해안에 있는 작은 섬 아일라(Islay)에서 만든 위스키를 말한다. 작은 섬이지만 위스키 증류소가 8곳이나 있는,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시 가후쿠와 다카쓰키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 둘은 과연 어떤 싱글몰트위스키를 마셨을까? 똑같은 술을 시켰을 것 같진 않다. 순전히 상상이지만, 두 사람이 애주가이며 자국의 위스키를 마셨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아내를 잃은 가후쿠는 부드러운 산토리를, 연인을 떠나보낸 다카쓰키는 거친 풍미의 닛카를 마시지 않았을까. 서로 같은 것을 공유하는 일은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인성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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