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한국인이 소주 찾을 때 미국인은 버번위스키 마신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25 09:01

장만진의〈랜선 위스키 바〉
세상에는 참 많은 술이 있지만, 위스키만큼 홈술에 제격인 술이 또 있을까요. ‘홈술’은 양보다 질입니다. 취하는 것보다 음미하는 행위에 가깝죠. 위스키는 단 한 잔만으로도 깊이 있는 맛과 적당한 취기를 느낄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홈술에 제격입니다. 새로운 홈술 취향을 찾고 있는 초보 애주가를 위해, 25년 경력의 바텐더 장만진이 알기 쉬운 위스키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위스키와 관련한 모든 것을 글로 풀어드립니다. 언제든 들려 마음껏 ‘음미’해주세요.

'랜선 위스키 바'에서는 집에서 단 한 잔만으로도 즐기기 좋은 술, 위스키와 관련한 모든 것을 전달한다. 사진 pexels

'랜선 위스키 바'에서는 집에서 단 한 잔만으로도 즐기기 좋은 술, 위스키와 관련한 모든 것을 전달한다. 사진 pexels

“버번위스키 한잔 추천해주세요”
제가 운영하는 바에 어느 날 미국인 손님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한국에 프리미엄으로 들어온 위스키를 소개했는데, 손님은 그 술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죠. 대신 바의 뒤편에 있는 술 중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저 술이 진짜 버번위스키”라고 말이죠.

사실 ‘위스키’하면 보통 스코틀랜드산인 스카치위스키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달콤하고 오크(참나무)향이 나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아메리칸위스키의 인기도 스카치위스키 못지않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아메리칸위스키가 바로 버번위스키(Bourbon Whisky)입니다.

스카치위스키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곁들이는 술이라면 아메리칸위스키는 길가의 친근한 식당에서 마시는 격식 없는 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품질이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메리칸위스키의 기술력과 생산력은 스카치위스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장점이 많음에도 세계화가 늦어진 이유는 자국 내 소비가 충분해 수출할 물량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위스키의 역사는 17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종교 박해와 가난을 피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인들이 고향을 떠올리며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당밀을 주재료로 만들다가 1790년대에 주세법이 제정되며 증류업자들이 세금을 피해 켄터키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호밀을 이용해 만든 게 바로 버번위스키입니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51~79% 정도 포함해 발효하는데 옥수수 대신 ‘호밀(rye)’을 주원료로 하면 라이위스키, 옥수수(corn) 함량이 80% 이상이면 콘위스키라고 하죠.

켄터키 바즈타운에 위치한 '바톤 1792 증류소'의 배럴 하우스. 사진 Barton 1792 distillery 공식 홈페이지

켄터키 바즈타운에 위치한 '바톤 1792 증류소'의 배럴 하우스. 사진 Barton 1792 distillery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주원료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지만 지역에 따라 켄터키주의 ‘버번위스키’와 테네시주에서 생산하는 ‘테네시위스키’로도 나뉩니다. 사실 두 가지 다 법적인 제조 규정은 거의 같습니다. 규정만 지킨다면 버번위스키는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생산 가능합니다. 반면 테네시위스키는 테네시 지역에서 생산한 원료로 만든 것만 인정합니다. 또 숙성 전 은행나무 숯에 꼭 여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위스키의 맛과 향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죠.

어쨌든 핵심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칸위스키 대부분이 버번이라는 점입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인 손님이 가리킨 술은 ‘버팔로 트레이스’입니다. 미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고, 인정하는 버번위스키 중 하나입니다. 즉 미국인이 한국에서 버번위스키를 찾는다는 것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참이슬 소주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죠.

당시 버팔로 트레이스는, 제가 미국인 손님께 추천한 술의 1/3 가격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손님을 위해 프리미엄 버번위스키를 추천하고 싶었고, 버팔로 트레이스는 그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일이 있고 나서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투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방문했던 한 현지 마트에서 제가 미처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트 진열장에 제가 추천했던 그 ‘프리미엄’ 위스키가 있었고. 가격이 버팔로 트레이스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어떠한 연유로 한국에서의 가격이 3배나 비쌌는지 알 수 없지만, 저도 모르게 가격으로 제품을 평가했다는 사실을 뉘우치게 해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련한 옛일을 떠올리며 특별한 아메리칸위스키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버팔로 트레이스도 포함했습니다.

① 미국인이 인정하는 버번위스키 ‘버팔로 트레이스’

버팔로 트레이스는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버번위스키 중 하나로, 시큼한 호밀맛이 느껴지는 거친 느낌이 특징이다. 사진 pixabay

버팔로 트레이스는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버번위스키 중 하나로, 시큼한 호밀맛이 느껴지는 거친 느낌이 특징이다. 사진 pixabay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과도 같은 술입니다. 200년의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탄생한, 가장 대표적인 버번위스키 중 하나이죠. 증류주 생산자를 뜻하는 마스터 디스틸러(Distiller)의 관리 아래 8년 이상 숙성된 원액으로만 만듭니다. 51% 이상의 옥수수와 10% 미만의 호밀, 10% 미만의 엿기름(맥아 보리),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재료 하나를 더해 완성된다고 합니다. 위스키에서 향은 중요한 역할을 하죠. 버팔로 트레이스는 바닐라 향과 민트의 아로마 향, 그리고 알싸한 향신료, 태운 참나무(오크)의 잔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맛은 시큼한 호밀 맛이 느껴지는 거친 느낌이 특징이죠.

② 켄터키주를 상징하는 프리미엄 버번 ‘1792 스몰배치’

'1792 스몰배치'는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매력적이다. 사진 장만진

'1792 스몰배치'는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매력적이다. 사진 장만진

켄터키주가 미국에 정식으로 포함된 1792년을 기념해 만들었습니다. 버번위스키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한 켄터키주를 상징하는 ‘프리미엄 버번위스키’입니다. 1879년 설립한 ‘바톤 1792’ 증류소에서 생산하며, 다른 버번위스키에 비해 호밀 함유량이 많아 스파이시한 향이 많이 느껴집니다. 에어링(위스키에 공기를 접촉해 맛과 향이 두드러지게 하는 것)을 하면 향신료의 향이 나면서도 버번 특유의 바닐라 향이 제법 올라오는데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 납니다. 맛을 설명하면 혀끝에 호밀 맛이 나면서도 버번 특유의 바닐라 맛은 유지되는 느낌입니다. 기존의 버번처럼 단맛이 강하진 않습니다.

③ ‘버번위스키의 아버지’를 기리는 ‘콜로넬 에드먼드 헤인즈 테일러 스몰배치’

'콜로넬 에드먼드 헤인즈 테일러 스몰 배치'는 버번 특유의 스파이시한 맛과 시나몬, 타바코 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장만진

'콜로넬 에드먼드 헤인즈 테일러 스몰 배치'는 버번 특유의 스파이시한 맛과 시나몬, 타바코 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장만진

현대 버번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헤인즈 테일러 주니어(Edmund Haynes Taylor, Jr.) 대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술입니다. 1700년대 후반 증류주 공장 ‘O.F.C. 디스틸러’를 인수해, 구리를 이용한 발효 및 증류법을 최초로 개발해 버번위스키에 적용한 사람이죠. 또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버번위스키의 품질을 보장하는 법률 규정을 담은 ‘보틀 인 본드 액트(Bottled-in-Bond Act)’를 시행하는 등 버번위스키 산업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규정을 지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콜로넬 에드먼드 헤인즈 테일러 스몰배치’이죠. 버터 스카치와 캐러멜의 달콤함, 후추의 알싸함 뒤로 버번 특유의 스파이시한 맛이 느껴집니다. 또, 시나몬과 타바코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프리미엄 위스키입니다.

DRINK TIP 위스키 맛있게 마시는 법
▪ 버번위스키 즐기는 법
온더록 잔에 얼음 없이 위스키 원액을 그대로 마셔보세요. 버번위스키가 가진 개성 있는 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위스키의 독한 향이 부담스러운 분은 잔에 물 몇 방울 떨어뜨려 보세요. 위스키가 희석되면서 향과 맛이 더 도드라지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답니다. 솔트 초콜릿과 함께하면 기분까지 좋아질 거예요.

장만진 cooking@joongang.co.kr

※중앙일보 쿠킹에서는 요리 전문가의 레시피와 에세이, 일상 속 건강한 팁을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요즘 뜨는 레시피, 건강하게 먹는 팁 등이 궁금하신 분들은 쿠킹의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