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정부 통상기능 조정
정부의 통상기능 조정 여파가 선을 넘다 넘다 태평양까지 건너갔다. 발단은 미국 정부 고위 관료가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지난달 29일 언론 보도였다.
기사 자체는 민간 전문가가 미국 고위 관료로부터 들은 말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전한 것으로 돼 있지만, 외교부는 이를 통상 기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산업부의 ‘언론 플레이’로 보는 게 분명했다.
외교부는 이날 한밤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소위 타국 정부 ‘입장’으로 왜곡해 국내 정부 조직 개편 관련 논리로 활용하려는 국내부처의 행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실상 산업부를 저격했다. “미국 측으로부터 한국의 통상 기능을 어느 부처가 소관하는지 선호가 없다는 입장을 확인받았다”면서다.
산업부도 해당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가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새 정부의 통상조직 관련 의견을 전달한 바 없다”는 설명 자료를 냈다. 하지만 산업부 설명 자료는 그런 의견을 전달받은 적 없다는 것이지, 미국이 통상 기능의 외교부 이관을 반대했다는 내용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해당 보도 뒤에 산업부가 있다는 외교부의 의심이 부디 큰 오해이고, 외교부의 오버였으면 좋겠다. 사실이라기엔 여러모로 너무 낯 뜨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이 한국의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해 입장을 표현한다는 전제 자체가 커다란 넌센스다. 그 자체로 내정 간섭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한 미 대사관 등은 해당 보도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했지만, 실제 미국 내부적으로는 대체 어떤 관료가 그런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취지의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설령 미국이 내심 이와 관련해 호불호를 갖고 있다 한들, 뭐 어쩌란 말인가. 통상 기능 조정은 온전히 한국의 국익에 기반해 결정할 일이다. 심지어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통상 분야에서 보자면 미국은 경쟁 상대이자 협상 대상인데 말이다.
두 부처 간 갈등 과정에서 이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은 전에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다 뒤늦게 동참한 탓에 초기에 반도체 대러 수출과 관련한 미국의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받지 못한 일과 관련해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FDPR 예외국 발표 직전인 2월 24일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한다면서도 “독자 제재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FDPR 면제는 제재에 적극 나서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에게만 해줬기에 한국은 여기서 빠졌다. 이에 혼란과 파장이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미국과 협상을 벌였고, 3월 4일에야 한국을 FDPR 면제국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에 이를 두고 독자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이 문제였다는 보도들이 통상 당국이나 관가 발로 나왔다. 이미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와 미국 상무부 채널은 돌아가는 중이어서 FDPR 면제는 어차피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에서 처음 (면제 대상) 리스트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산업부와 상무부 간 실무진이 협의하며 조율해 왔다”고 사실상 이를 확인했다.
결국 공연히 외교부가 섣부른 입장을 발표해 일을 키웠다는 식의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는 통상의 정부 정책 결정 과정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다.
사소한 사안도 아니고,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제재하는 문제다. 청와대의 사전 재가나 관련 부처와의 협의 없이 외교부 당국자가 단독으로 이런 입장을 밝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외교부를 포함해 부처 취재만 10년 넘게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용감한 대한민국 공무원은 본 적이 없다.
또 정말로 외교부가 헛발질을 한 거라면, 통상교섭본부는 왜 당시에 이를 곧바로 바로잡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아무런 반박이나 설명을 하지 않은 채 한국은 FDPR 면제를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산업 현장의 혼란과 불편이 커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실 대러 제재의 본질이야말로 ‘경제안보적 사고’였다. 제재가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과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제재 연합에 동참하는 정치적 의미를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이런 본질 파악에 미흡한 모습을 보였으면서 사후에 서로 기싸움이나 하려 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꼴사납다. 통상 기능 보유에 대한 두 부처의 절박함은 알겠지만, 이는 논리로 정면승부를 볼 일이지 장외전을 벌여서 될 일도 아니다.
외교부로서는 국내 산업계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답을 내놓고, 통상 업무에서 배제된 지난 9년간 전문성에서 뒤처지게 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반대로 산업부는 통상 문제가 더 이상 독자적 분야가 아니라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무기화되고 있는 현 추세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약점에 대한 답을 내놓고, 이미 지나간 과거 자유무역협정(FTA)의 시대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두 부처 간 갈등이 가져올 장기적 파장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곧 어떤 식으로든 통상 기능 조정과 관련한 결론을 낼 것이고, 두 부처는 물론 이에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양상에 향후 경제안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두 부처의 유기적 융합이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만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