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수처, 통신사찰 설명도 사과도 없이…'반쪽 보완책' 발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월 30일 오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 30일 오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무차별 통신조회를 통한 불법사찰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뒤늦게 보완책을 발표했다. 전담 심사관을 지정해 통신자료 수사의 적정성을 사전·사후에 심의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왜 무리하게 통신조회를 벌였는지에 대한 설명과 조회를 당한 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 표명 등이 없어 ‘반쪽 보완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 심사관 사전·사후 통제 제도 발표…근본 해결책 될까

공수처는 1일 '통신자료 조회 사전·사후 심의 통제' 안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이날부터 ▶인권수사정책관이 통신자료조회심사관을 통해 통신자료 조회 사전·사후 통제▶통신자료 조회 기준 마련 및 건수별 승인 권한 지정 ▶통신자료 조회 상황 수사자문단 정기(격월) 보고 및 심의 의무화 ▶통신자료 조회 대상 선별 분석 프로그램 도입 ▶통신자료 조회 점검 지침(예규) 제정 등을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공수처는 내부 점검을 통해 ▶통신자료 조회 과정에서 동일인 중복 조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다수 참여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통신자료 조회가 과도했는지 점검할 콘트롤타워 부재 ▶수사 부서별 조회 기준 상이 등의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지난달 30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간담회에서 무차별 통신조회를 통한 불법사찰 논란과 관련해 “앞으로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수처가 내부 점검을 진행하고 개선안을 내놓은 이유는 지난해 고위공직자가 아닌 기자, 가정주부 등 일반인을 포함해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통신사실확인자료 등을 조회하며 불법사찰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통신자료란 통신서비스 가입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성명·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주소 등)으로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 없이 받을 수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란 착·발신 통화 상대방 내역, 통화시간, 문자메시지 전송 일시, 발신기지국 위치 등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물론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면서 피의자와 공범 등을 대상으로 통신 조회를 하는 건 일반적인 수사 절차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위공직자가 아닌 사람도 범죄에 연루됐다면 조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왜 조회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게 문제다.

11월 23일 오전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출근 중이다. 연합뉴스

11월 23일 오전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출근 중이다. 연합뉴스

왜 했는지 설명도, 구체적 사과도 없어

공수처는 특히 고위공직자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구실로 중앙일보·TV조선 기자들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하고 기자들과 연락한 상대방의 통신자료를 마구잡이로 조회하며 언론 사찰 논란을 자초했다. 해당 기자들이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고검장 황제조사’,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 등을 보도한 것과 관련해 공수처가 기자를 대상으로 강제수사를 벌인 것이기 때문에 ‘보복 수사’ ‘친정부 인사 방탄 수사’ 논란도 제기됐다.

이런 조사 과정에서 공수처는 결과적으로 기자의 가정주부 어머니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까지 들여다보며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증폭됐다. 야당 의원 100명가량을 조회하고 윤석열 팬클럽의 가정주부 회원 등을 조회했다는 점에선 야권 탄압 논란도 일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원들 수십 명과 관련해선 “학문의 자유를 억압한다”라는 시비가 들끓었다.

법조계에선 이날 공수처가 발표한 보완책에 대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대안만 내놓았을 뿐 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와 관련한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각 사건에서 왜 이렇게 통신자료·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를 했는지 이유에 대한 설명도 빠져 있다.

책임지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한 법조인은 “문제 해결의 시작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진상조사를 통한 책임 추궁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며 “공수처가 이날 발표한 개선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16일 공수처 구성원에게 보내는 e메일을 통해 “초대 처장으로서 우리 처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제 소임을 다하면서 여러분과 함께할 생각”이라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여운국 차장도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은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출범한 공수처는 과거 검찰이 보인 것보다 더 심한 악(惡)을 보여줬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울뿐인 재발방지 대책만 발표한다면 국민이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