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측은 협상 후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주변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미 수세에 몰린 지역에서 빠져나와 동부 돈바스 등에 병력을 재편성하는 시간을 벌면서 종전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미 키이우서 주도권 잃어, 후퇴 의미"
우선 러시아가 키이우 등에서 작전을 축소한다고 한 것은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로렌스 프리드먼 전쟁학 명예교수는 NYT에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의 군사 활동) 축소는 후퇴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현실에 맞게 목표를 조정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계략이 아니고, 실제로 그들이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라고 했다.
이미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의해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지역에 잇따라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같은 후퇴를 항복으로 봐선 안되며,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는 자국민들에게 "전쟁에게 이겼다"고 선전할 수 있는 더 나은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병력 재편성 시간 벌듯, 전쟁 쉽게 안 끝내"
프랑스 전략연구재단의 안보 전문가 프랑수아 하이스버그는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입장이 아니다"며 "푸틴은 전쟁을 쉽게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번 군사 활동 축소 발표는) 러시아가 병력을 강화·재집결하고, 병참상 접근이 어려워 이미 식량과 탄약이 바닥난 지역에서 빠져나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러시아가 최소한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친러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를 연결하는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장악하고, 돈바스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 뒤에야 휴전 협상에 진지하게 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지위 인정과 돈바스 루한스크·도네츠크의 독립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영토 문제는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 지점이어서 최고위층의 담판이 유일한 해법으로 거론돼 왔다.
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번 협상에서 크림반도의 지위에 대해 15년에 걸쳐 러시아와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또 우크라이나 측은 돈바스에 대한 통제는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은 평화협상 초안이 마련되면 두 정상 간에 회담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우크라 동부에 집중 전망"
영국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동부에 집중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는 대대적으로 반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아직 키이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30일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동부 지역에 주력하기 위해 부대를 재편성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 활동을 축소하겠다는 건 부대 재배치를 통해 우크라이나군 수뇌부에 혼란을 주고, 마치 키이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BBC에 따르면 러시아의 정치학자 키릴 로고프는 "5차 협상이 전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 이번 협상을 계기로 러시아가 전쟁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