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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습기살균제 최종안…간병비 늘고 사망지원금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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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은 지난해 8월 30일,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은 지난해 8월 30일,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뉴스1

지난 2011년 처음 알려진 뒤 수천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나온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관한 최종 조정안이 나왔다. 피해자와 기업 간 사적 조정을 위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가 꾸려진 지 약 6개월 만이다.

최종 조정안은 앞서 이달 중순 공개된 2차 조정안과 비교해 피해자 단체가 주장해온 간병비 증액이 일부 반영됐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조정안에 반발하는 피해자가 있는만큼 이들이 최종안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조정 대상 7027명(피해 판정 대기자 포함) 중 절반 이상이 3개월 내에 동의해야 조정이 최종 성립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처음 확인된 이후 11년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합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빠진 민간 차원 조정위가 뒤늦게 꾸려졌고, 지난달 조정안 초안이 나왔다. 이번 최종안은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기업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28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옥시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28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옥시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최종 조정안 도출…최중증 피해자 최대 5억여원

29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최종안에 따르면 폐 이식 등을 받아야 할 정도인 초고도(최중증) 피해자에 대한 지원액은 최대 8392만(84세 이상)~5억3522만원(1세)이다. 나이가 적을수록 더 많이 지급하는 식인데, 연령 기준이 '조정 신청 개시 시점'이기 때문에 사실상 1~10세 대상자는 없고 11세부터 적용되는 셈이다. 피해자 상황에 따라 간병비, 고액치료비(3000만원), 가족 내 복수 피해자 추가지원금(1000만원) 같은 지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단계인 고도 피해자는 7093만(84세 이상)~4억730만원(1세) 수준이다. 피해 등급이 낮아질수록 지원액은 줄어든다. 조정액을 받게 되면 기존에 정부에서 받은 요양생활수당은 최대 2년분까지 공제해야 한다.

사망 피해자 유족 지원금은 기존에 나온대로 2억~4억원으로 결정됐다. 사망 당시 1~19세인 경우 4억원, 60세 이상이면 2억원을 받게 된다. 이들 유족이 정부에서 받은 최대 1억원 정도의 특별유족조위금·구제급여조정금·추가지원금 등은 모두 빼고 지급한다.

최종안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미래 간병비'다. 2차 조정안에선 연 180일 이상 간병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향후 5년치 간병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최종안에서는 여기에 더해 연 300일 이상 간병해야 하는 피해자에 8년치 간병비를 줄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다만 그 외에 피해자 단체가 요청했던 사망 피해자 유족 지원금 상향, 미성년 피해자 배려, 태아 피해자 특별 지원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고통 참아온 피해자들 "기업들 더 부담해야"

피해자 단체들에 따르면 조정안 총액은 별도 계산이 필요한 간병비, 고액 치료비 등을 제외하면 8000억~9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참사 책임이 큰 기업들이 최소 수천억원 이상의 재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인과 장모가 숨진 피해자 유족 송기진씨는 "조정안 총액이 변하지 않으면 조정위가 세부 항목을 바꾸는 데도 한계가 있다. 10여년간 살균제 원료 공급을 주도했던 SK 등 기업들이 사회적 도의상 분담금을 더 내야 피해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이상 걸린 조정안을 보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피해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은 있지만, 오랜 치료에 따른 엄청난 빚 등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피해자 유족과 중증, 경증 피해자 간의 입장도 조금씩 다르다.

2019년 말 목 절개로 말을 할 수 없어 병상에 누워 손글씨로 소통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씨 모습. 지금은 몸이 굳어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2019년 말 목 절개로 말을 할 수 없어 병상에 누워 손글씨로 소통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씨 모습. 지금은 몸이 굳어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배구 선수·심판 출신인 안은주(54)씨는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그는 2011년 처음 쓰러진 뒤 2015, 2019년 두 차례 폐 이식을 받았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이지만 합병증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위독한 상태다. 의식이 흐려질 때가 많아 조정안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 28일에도 "의식이 없다"는 연락을 받고 언니 안희주씨가 급히 병원에 달려가야 했다.

안희주씨는 "상태가 나빠졌다가 약간 안정을 찾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젠 몸도 굳어 눈이나 고갯짓으로 소통해야 한다"라면서 "조정액은 곧 동생 인생 값이다. 조카들에게 물어 조정안을 수용할 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1일 SK 서린빌딩 앞에서 조정안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1일 SK 서린빌딩 앞에서 조정안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다음주 발표할 듯…피해자 반발이 최대 변수

특히 일부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조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변수다. 민간 조정에 맡겨놓고 한 발 빠져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크다. 피해자 조순미씨는 조정안 전면 수정을 외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나섰다. 20대 아들 세 명과 본인 모두 피해자인 박수진씨는 22일 조정위 앞에서 "(조정안 수정은) 엄마의 부탁이자 간절한 소망"이라면서 삭발했다.

미성년 피해자 박준석(15)군은 몸 속 장기가 성한 곳이 없다. 매주 병원에서 주사치료를 받아야 한다. 박군의 어머니 추준영씨는 "아이들이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치료비라도 보전해야 하는데 일시금으로 조금 주고 끝이라고 한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도 커서 꿈 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사실상 짓밟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 어떻게...

조정위는 조정 내용을 받아보는 데 동의한 피해자 단체 20여곳에 최종 조정안을 공유했다. 이들 단체와 조정에 참여한 9개 기업이 이번주 내로 최종안 발표에 동의한다는 회신을 보낼 예정이다. 다만 일부 기업 등은 입장이 유보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조정위는 다음주 중에 조정안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개별 피해자들에게 조정 동의를 받는 절차가 진행된다. 조정위 측은 "조정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와 새로 확인된 피해자들도 정부에서 지급하는 피해구제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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