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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습기 살균제 피해, 최대 4.8억 지원…11년 만에 조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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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은 지난해 8월 30일,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은 지난해 8월 30일,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뉴스1

지금까지 1700명 넘게 숨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이 밝혀진지 11년 만에 첫 합의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사망자엔 최대 4억원, 중증 환자는 최대 4억8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조정위원회가 출범한 지 4개월여 만에 피해자와 기업 양측을 조정하는 초안이 나왔지만 일부 피해자의 반발 등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가습기 참사 확인 후 첫 공식 합의 초안 #7000여명 대상 조정, 피해자 반발 '변수' #최종안 도출, 다음달 초로 늦어질 수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 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8명의 환자가 동시에 입원하면서다. 호흡 곤란을 호소한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이었다. 이중 산모 4명이 결국 사망했다. 4개월간 역학조사를 마친 질병관리본부는 산모들의 폐 손상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1년째 해결 못한 피해자 구제…첫 조정 초안

하지만 피해자 구제는 정부 공식 역학조사 이후 11년째 미해결 상태다. 2017년 피해구제특별법 제정에 따른 피해자 인정과 급여 지급, 형사 재판 등이 진행됐지만 정작 피해자와 기업 간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피해 구제 신청자는 지난달 기준 7651명, 사망자는 1742명으로 늘었다.

피해 발생 10년째인 지난해 10월 정부가 빠진 민간 차원의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가 꾸려지면서 본격적인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조정위는 피해자 단체와 기업 등의 의견을 듣고 금전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조정안 초안에 따르면 조정 대상은 모두 7018명이다. 피해 구제 신청자 중 개별 기업 합의자, 신청 철회자 등은 제외됐다. 조정액에는 피해자 지원금과 피해자 추가 지원금, 사망자 유족 지원금, 노출 확인자 지원금 등이 포함됐다.

*대상자 수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상자 수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피해 정도,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 

각 기업이 분담할 지원금은 원칙적으로 피해 등급과 연령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가장 중증인 초고도 피해자는 치료비, 생활수당 등을 포함해 3억5800만~4억8000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9세 이하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받고, 나이가 많은 피해자가 적게 받는 식이다. 연령 산정 기준을 언제로 잡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고도 등급'에는 최대 3억7200만원, '경도 등급'에 최대 1억75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초안에 포함하지 않은 간병비는 향후 추가될 여지가 있고, 생활수당은 기존 법적 지급분에서 최대 2년 치를 공제하고 주도록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에게는 1억5000만~4억원의 사망자 지원금을 주도록 했다. 다만 특별법에 따라 기존에 받았던 특별유족조위금 등은 모두 공제하고 나머지 액수만 받게 된다. 치료할 때 받은 요양급여와 간병비, 장의비는 공제 대상이 아니다.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단순 노출자에겐 500만원을 지급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피해자 "지원금 상향·향후 치료비 전액 지급을"

피해자들은 이번 초안이 사실상 모든 신고자를 대상으로 포함한 것과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지원하는 것 등에서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반발도 적지 않다. 11년 넘게 고통받은 대가라고 하기에 너무 적은 금액이란 주장이다. 기업이 이번 조정을 핑계로 향후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사망자, 중증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규모가 워낙 적은 편이라 이들이 수용할지 미지수다. 사망자가 경증 피해자보다 적은 금액을 받는 건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부인이 숨진 유족 김태종 씨는 "터무니없이 10억, 20억원을 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 걱정 안 하고, 사망한 분에 대한 합당한 대우만이라도 해줘야 한다"라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대선공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대선공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피해자 단체들은 조정위 측에 1차 수정 요구를 전달했다. 이들은 중증·사망 피해자 지원금 상향과 향후 치료비 전액 실비처리, 경제활동 연령 가중치 반영 등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도 초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지만,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조정위가 진행 중이라 따로 얘기할 게 없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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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3자 회의…합의까진 시일 걸릴 듯

곧 피해자·기업·조정위 3자 회의가 열려 수정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변수가 많아 합의까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종안은 이달 말까지 도출할 계획이지만 다음 달로 늦춰질 수 있다. 조정안이 발표되면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조정 개시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동의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동의서 수령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0% 동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조정안은 무산된다.

합의가 빈손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최대한 피해자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시한을 정하지 말고 20% 동의를 받는 때부터 효력이 인정되는 식으로 규정을 바꿔야한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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