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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파묵 "푸틴의 공격, 용서할 수 없어..다시 중세가 왔다"

중앙일보

입력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사진 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사진 민음사]

"작가로서 결정한 게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제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이 사건의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그래서 민나 민게를리를 택했습니다. "
 터키의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70)의 말이다. 민나 민게를리는 그의 신작 소설 『페스트의 밤』의 화자. 1901년 페스트가 창궐한 지중해 섬이 배경인 이 작품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왕족 여성이 남긴 기록에 바탕해 그 증손녀가 쓴 소설인것처럼 전개된다.
 한국 기자들의 서면 질문에 파묵은 화상 답변을 통해 "저는 중동 지역 남성"이라며 "중동 지역 남성들의 전형적이고 형편없는 사고들이 안타깝지만 물론 저에겐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제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전적으로 여성의 눈으로 서술한 소설 한 편을 (죽기 전에) 쓸 생각"이라고도 덧붙였다.
"과거에는 몰라서, 지금은 알아서 두려워한다"
 이 소설은 10여년 전부터 전염병과 관련된 자료를 섭렵하며 준비해 2016년 집필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을 예견하고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섬의 총독이 전염병 발생 사실을 감추려는 것부터 그렇다. 파묵은 과거와 현재의 팩데믹을 비교하며 "매번 정부, 주지사, 군수, 대통령, 총리는 먼저 전염병을 부인한다"며 이어 다양한 국적·종교 등을 열거하며 "이 전염병을 누가 가져왔는지, 뒷담화를 시작하고 소문이 확산된다"고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반면 "과거에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알기 때문에 두려워 한다"며 현대사회에 넘치는 정보와 그 유통에 관한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이제 객관적인 정보는 사라졌다"며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취재한 사실들을 믿는 대신 친구가 페이스북에 쓴 헛소문을 믿는다. 소셜미디어,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이런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카뮈의 '페스트'는 정치적 알레고리 
 페스트를 다룬 카뮈의『페스트』에 대해서는 "19세 때 읽고 감명을 받았다"면서도 "사실 페스트에 대한, 방역에 대한 사실주의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다. 예컨대 밤에 환자를 이송하는 장면에 대해 "카뮈는 이 장면을 나치가 유대인들을 태우고 수용소로 데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쓴 것"이라며 "『페스트』는 나치들이 프랑스를 점령 것을 묘사한 아주 멋진 알레고리 소설"이라고 말했다. "카뮈는 위대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쓴 것은 정치적 알레고리이고, 저의 소설은 페스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팬데믹 소설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사진 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사진 민음사]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세계 여러 작가들과 연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푸틴의 공격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아주 원시적이며, 중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습니다. 두 왕이 협약을 했지요. 이 마을은 내 것, 저 마을은 네 것이라고 점령을 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는 무시하구요. 서구 세계는 우크라이나 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해 도와주는 한편 안타깝지만 관망도 하고 있습니다. " 그는 냉전의 붕괴 이후 러시아의 핵무기 보유가 간과됐던 점 등을 지적하며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인류가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은 끝날 것, 한국에 다시 가고파"
 가상의 섬이 배경이면서도 이번 소설은 오스만 제국이 쇠퇴한 실제 역사와 맞물린다. 파묵은 "제 소설은 한편으로 페스트의 창궐 당시 인간의 영혼의 반응,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서술하고 있다"며 "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 말기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로마 제국이 이방인에 의해 붕괴되지 않았듯 제 생각에 오스만 제국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붕괴하지 않았다"며 "오스만 제국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쪼개졌다. 슬라브·그리스·불가리아·아랍·조지아 등 수많은 민족주의가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제 작품이 사랑받는 것이 너무 좋다"며 "지금까지 한국을 두 번 방문했는데,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이 팬데믹이 끝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저 같은 나이의 사람은 매년 한두 번 예방주사를 맞아야겠죠. 다시 한국에 가서 박물관들도 방문하고, 거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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