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되찾기 자신 없는 쿠웨이트(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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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망명정부,해외재산 돌보는게 고작/반정부세력 지지불구 난민 관리ㆍ조직화 엄두 못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자리잡고 있는 쿠웨이트 망명정부는 망명 쿠웨이트 민간인 뿐만 아니라 과거의 반정부세력들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아직도 허탈감에 빠져있다.
이라크에 빼앗긴 조국탈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점령된 쿠웨이트 국내 사정의 악화 때문이다.
망명 정부는 쿠웨이트에 가까운 접경지역 카프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 기능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자베르 알 사바 국왕을 비롯한 왕족ㆍ실력자 출신들이 모여 1천억달러 내외로 추정되는 해외재산 관리 정도에나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다만 쿠웨이트내 반이라크 저항운동 지원을 위해 쿠웨이트군 출신 또는 지원자들을 모아 사우디군 등에 「위탁교육」 및 자금지원을 하고 있는 정도이며 10만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쿠웨이트 난민들에 대한 관리나 조직화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지난 1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다에서는 망명정부 관계자와 민간인 단체로 구성된 「쿠웨이트 국민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의회는 망명 자베르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을 중심으로 단결을 강조하고 조국 탈환에 대한 굳은 의지를 재확인 했다.
그러나 이 의지는 조국탈환 후의 희망일 뿐이지 현실은 먹구름으로 덮여 어둡기만 하다.
이 회의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쿠웨이트 전 국회의장인 아마드 사돈씨였다.
사돈은 86년 자베르 알 사바 국왕에 의해 국회가 해산직후 민주화운동 조직 「헌법운동」을 결성,이끈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30명의 국회의원(정원 50명),45명의 각계 대표와 함께 국회활동의 재개와 민주적 선거 등을 외치며 활동을 계속해 왔다.
의회의 기능이 정지된 이후 정부측과 사돈 등 민주화운동 그룹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과연 이번 국민의회에서 이라크에 대한 공동전선을 펼수 있을까가 의문시 되었던 만큼 사돈의 지지표명은 의외의 일이었다.
이같은 망명 쿠웨이트인들의 단결은 쿠웨이트의 국민투표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등을 연결시켜 쿠웨이트 반정부주의자나 팔레스타인인,아랍민족주의자의 지지를 확보하려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의도에 일단 타격을 안겨준 셈이다.
그러나 쿠웨이트 국내문제를 점령국에 맡겨놓은 채 손도 쓸 수 없으며 국내사정이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망명정부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불과 인구 2백만명 가운데 80만명을 차지했던 쿠웨이트 시민중 30여만명이 사우디아라비아등 중동국가로,10만명 이상이 유럽으로 빠져나가 이제 겨우 20만∼30만명이 쿠웨이트시에 남아있을 뿐이다.
게다가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쿠웨이트시로 이주해와 이미 쿠웨이트인이 소수파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쿠웨이트에서 탈출한 파티마 후세인씨는 쿠웨이트가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고 있으며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인 총살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의 경제기반인 각종 석유시설은 이라크 수중에 넘어가 매일 5천만∼6천만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되고 있다.
『우리들은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으며 되찾을 수도 없다. 아랍 제국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중 한사람인 아메드 카티브씨는 통곡했다.
나라 잃은 설움,망명정부의 무력감이 통곡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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