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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양 많아 보이는 그릇, 작은 숟가락으로 식사? 적게 먹어도 배불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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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감쪽같이 속이는 다이어트 
봄을 맞아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이럴 때 뇌를 속여보는 건 어떨까. 알고 보면 살이 찌는 것과 공복감·포만감은 모두 ‘뇌’와 관련된다. 배가 고프면 식욕 촉진 호르몬이 뇌에 신호를 보내 음식을 찾게 하며, 배가 부를 땐 식욕 억제 호르몬이 작용해 수저를 내려놓게 한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착시 효과와 식사 속도, 저작 운동 등을 활용하면 ‘많이 먹은 것처럼’ 뇌를 속여 식욕을 다스릴 수 있다.

많아 보이는 그릇에 음식 담기

양이 많아 보이는 착시 효과를 사용하면 뇌가 실제로 포만감을 잘 느껴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대한영양사협회 학회지(2022)에 따르면 동덕여대 식품영양학과 장은재 교수팀이 20대 여성 36명을 대상으로 3주에 걸쳐 김치볶음밥을 점심으로 제공했다. 첫째 주엔 일반 밥그릇에 400g(676.8㎉)을, 둘째 주에는 ‘착시 밥그릇’에 300g(507.6㎉)을, 셋째 주에는 일반 밥그릇에 300g(507.6㎉)을 제공했다. 착시 밥그릇은 그릇 밑부분을 높여 특수 제작한 것으로, 밥을 300g만 담아도 일반 밥그릇에 400g을 담았을 때와 겉으로 봤을 때 구분이 안 됐다. 연구팀은 일반 밥그릇으로 400g을 먹었을 때와 착시 밥그릇으로 300g을 먹고 난 후 참가자의 포만도를 비교했다. 포만도는 수평자를 이용해 측정했으며, 수평자의 왼쪽 끝은 ‘배가 부르지 않는 상태’, 오른쪽 끝은 ‘배가 매우 부른 상태’로 설정했다. 연구결과 참가자는 식사 직후 포만감에 대해 수평자의 기준점을 각각 8.9㎜, 8.6㎜만큼 이동했고, 식사 1시간 후엔 모두 7.3㎜씩 움직였다. 100g을 적게 먹어도 포만도가 같았다. 반면에 같은 300g을 먹어도 일반 밥그릇으로 먹을 때는 착시 밥그릇으로 먹을 때보다 포만감이 낮았다. 연구팀은 “포만도는 ‘실제 섭취량’보다 시각으로 인한 ‘인지 섭취량’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작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먹기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은 식후 20분부터 분비되는데, 음식을 너무 빠르게 먹으면 위가 늘어나는 것을 뇌가 알기도 전에 과식하기 쉽다. 이로 인해 렙틴이 한참 뒤에야 분비된다. 고려대 안산병원 김도훈 교수팀의 연구결과(2012)에 따르면 5분 내 식사를 마치는 남성은 15분 이상 먹는 사람보다 섭취 칼로리가 평균 110㎉ 더 많았다. 숟가락 크기를 줄이기만 해도 식사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수원여대·안산대·동덕여대 공동 연구팀은 대학생 24명을 대상으로 성인용 일반 숟가락(부피 8.3㏄)과 어린이용 작은 숟가락(부피 4㏄)을 제공한 다음, 첫째 주엔 일반 숟가락으로, 둘째 주엔 작은 숟가락으로 식사(577.4㎉)하게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일반 숟가락으로 먹을 때는 13.6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작은 숟가락으로 먹을 땐 15.7분으로 식사 시간이 길어졌다. 1분당 섭취량은 각각 35.7g, 27.9g으로 작은 숟가락으로 먹을 때 더 적었다. 하지만 포만감은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천천히 오래 먹으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배고플 때 무설탕 껌 씹기

음식을 꼭 삼키지 않고도 뇌에서 일시적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저작 운동’(입으로 씹는 행동)이다. 충분한 저작 운동은 음식물을 잘게 쪼개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뇌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고 여겨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단맛 음료를 즐기면 살이 잘 찌는 것도 단순히 단당류가 다당류보다 몸에 더 잘 흡수되는 이유뿐 아니라 ‘씹는 행위 없이 바로 섭취하기 때문’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식사 전 껌을 씹으면 공복감을 줄이면서 단맛 음식에 대한 욕구도 줄여 다이어트에 도움된다. 단, 다이어트가 목적일 땐 무설탕 껌을 선택한다. 저녁 식사 후 잠들기 전 배가 고프다면 약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게 권장된다. 뇌의 교감신경을 자극해 위장 활동을 억제하고 식욕 조절에 도움될 수 있어서다.

접시·식탁보 빨간색 X 파란색 O

뇌는 색깔에 따라 식욕을 조절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학생 225명을 대상으로 스파게티를 각각 흰 접시와 빨간 접시, 흰 식탁보와 빨간 식탁보에서 먹게 한 다음 각각의 요소가 식사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 연구결과, 흰 접시에 먹은 그룹은 빨간 접시 그룹보다 평균 식사량이 21% 더 적었다. 또 흰 식탁보에서 먹은 사람은 빨간 식탁보에서 먹은 사람보다 섭취량이 10% 더 적었다. 연구팀은 빨간색이 뇌의 감정 중추뿐 아니라 식욕 중추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에 파란색·보라색 계열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일본 도요대의 색채학자인 노무라 주니치 박사는 색깔에 대한 식욕 반응 연구를 통해 ‘식욕 스펙트럼’을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빨간색·주황색에서 식욕 반응이 가장 높았고, 노란색과 녹색이 그 뒤를 이었다. 황록색·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이어지는 색상에서는 식욕 반응이 급격히 떨어졌다. 실제로 빨간색·주황색·노란색 등 빛 파장이 길고 따뜻한 색은 긴장과 흥분도를 높여 식욕을 돋우고, 파란색·보라색 등 파장이 짧고 차가운 색은 긴장과 적대감을 낮춰 마음을 가라앉히며 식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된다.

도움말=전지은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황환식 한양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고기동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형미 연세대 임상영양대학원 객원교수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채소·고기부터 먹으면 그렐린 줄고 식욕 멈춥니다"

인터뷰  -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강재헌 교수

강재헌 교수

식욕 촉진 호르몬(그렐린)과 식욕 억제 호르몬(렙틴)은 뇌에 공복감과 포만감 신호를 보낸다. 이들 호르몬을 조절하면 뇌를 속여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에게서 해답을 들었다.

호르몬을 조절해 뇌를 속일 수 있나.
"그렐린의 경우 가능하다. 그렐린은 공복 시에 분비된다. 음식을 먹으면 위벽이 늘어나고, 그렐린 분비가 감소해 식욕을 억제한다. 탄수화물 중에서도 단위면적당 표면적이 넓고 껍질이 정제된 밀가루는 소화·흡수가 너무 빨라 포만감을 덜 일으키고, 그만큼 그렐린이 많이 나오게 돼 살을 찌운다. 기왕이면 표면적이 좁고 껍질이 있는 알곡(현미·잡곡) 형태의 탄수화물, 열량이 낮은 단백질(기름 제거한 살코기)로 배를 채우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면서 그렐린 분비가 감소해 식사를 멈출 수 있다. 반면 렙틴은 체지방에서 분비되는데, 렙틴을 늘리려면 체지방을 늘려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하다."
많이 먹어도 금방 배가 고프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3대 영양소의 포만감 지속 시간은 단백질이 최대 4시간이지만, 탄수화물·지방은 1~2시간에 불과하다. 고지방·고당류 음식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뇌가 허기를 빨리 느끼게 해 식욕을 촉진한다. 조리할 때 기름·당류 사용을 최소화하고, 식사 시 채소(샐러드)와 단백질(생선·육류·콩류 등)을 탄수화물(곡류)보다 먼저 먹으면 포만감이 오래 가 탄수화물 과식을 막을 수 있다.”
뇌를 속여 운동량을 늘릴 수도 있나.
“TV 시청이나 음악 감상은 뇌가 영상·음악에 집중하게 돼 기존의 처리 영역에 대해 비교적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를 운동에 활용하면 운동이 힘들거나 지루하다는 점을 잊게 해 운동량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식사 때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되레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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