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산불에 신분증 탄 82세 유권자…“당선된 분이 얼른 집 복구해줬으면…"

중앙일보

입력

산불 이재민 전남중 어르신이 불에 탄 신분증 대신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를 임시 발급해 9일 투표 전 본인 확인을 하고 있다. 뉴스1

산불 이재민 전남중 어르신이 불에 탄 신분증 대신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를 임시 발급해 9일 투표 전 본인 확인을 하고 있다. 뉴스1

“산불 때문에 급히 집에서 나오면서 아무것도 못 챙겼고, 신분증도 다 타버렸습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당연히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임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경북 울진군 산불로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이재민 전남중(82)씨의 말이다. 전씨는 9일 오전 자신의 신분증 대신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를 가지고 북면 제1투표소로 향했다.

울진군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신분증을 놓고 대피한 이재민들은 관할 읍·면·동사무소를 직접 찾아가 임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를 마친 전씨는 “이번에 대통령 된 분이 집을 얼른 복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이날 오전 대형 산불이 엿새째 이어지는 울진에서도 이재민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했다.

이날 오전 8시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산불 피해 이재민들은 선관위가 제공한 투표소행 버스에 탑승했다. 울진군 북면에 거주하는 70대 주민은 버스에 탑승한 뒤 신분증을 확인하면서 “산불로 대피소에 온 상황이지만, 투표는 꼭 하려고 했는데 버스가 와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도선관위는 몸이 불편한 이재민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셔틀버스 4대를 오전 8시와 10시 두 차례 관내 20개 투표소까지 운행했다. 현재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는 180여 명의 이재민들이 대피해 있다. 이들은 투표 후 임시 거처인 덕구온천리조트로 이동하게 된다.

울진에 이날 마련된 울진초등학교 체육관 등 지역 내 총 20곳 투표소들은 도심 내에 위치해 화재에 대한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초등학교에 마련된 북면 제1투표소를 찾은 산불 이재민 전남중 어르신이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로 본인 확인을 마친 뒤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초등학교에 마련된 북면 제1투표소를 찾은 산불 이재민 전남중 어르신이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로 본인 확인을 마친 뒤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민들의 투표는 선관위의 도움으로 원활히 진행하고 있으나, 외부에서 온 소방관 등의 경우에는 본인의 주소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투표를 할 수 없다. 울진군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이재민이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 등 관계자를 위해 별도의 투표소를 설치한다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주소지를 관할하는 투표소에서 기표를 해야 한다.

울진군 선관위 관계자는 “외부에서 온 진화 인력 등은 본인의 주소지에서 투표해야 한다”며 “안타깝지만 공직선거법상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산림당국은 진화 인력 중 투표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교대 근무 등을 통해 투표권을 적극 보장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8시 현재 3333명의 인력이 진화에 투입됐다. 소방관 756명, 군인 1065명 등이다.

지난 4일 오전 발생한 울진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강원 삼척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8일에는 울진군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 불씨가 피어 산림당국에 긴급 진화에 나섰다. 산림당국은 9일 울진 산불의 주불 진화를 목표로 인력을 총동원해 진화 작업에 고삐를 죈다는 계획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산불 이재민들이 투표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산불 이재민들이 투표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산림당국과 경찰은 이번 산불이 담배꽁초 등에 의한 실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최초 발화 지점 인근을 지나간 차 4대를 조사 중이다. 지난 4일 오전 11시 15분쯤 울진군 북면 두천리 한 야산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사설 폐쇄회로TV(CCTV)에 담겼다.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은 왕복 2차선 도로 옆 배수로다.

현장 감식 결과 배수로 안쪽에 불에 탄 나뭇가지와 낙엽이 남아 있었고 불이 위쪽 산으로 향한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방범용 CCTV를 통해 산불 신고 직전 10분여 동안 지나간 차 4대의 차량번호와 종류 등을 파악해 산림청에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방범용 CCTV에는 차량 번호는 찍혔으나 차에서 담배꽁초 등을 버렸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산불 원인을 조사 중인 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사는 “현재는 진화 작업에 집중하고 주불이 어느 정도 잡히면 관계 기관과 협의해 화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