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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1조 '문케어 끝판왕' 척추MRI 건보…"발 질질 끌 정도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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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MRI 검사를 시작하기 전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MRI 검사를 시작하기 전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1일부터 일부 퇴행성 척추질환의 자기공명영상진단(MRI)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일명 문재인 케어)의 일환이다. 2018년 10월 뇌·뇌혈관 질환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두경부, 같은 해 11월 복부·흉부·전신 MRI 검사 건보 적용에 이어 이번에 척추질환으로 확대됐다.

퇴행성 척추병에도 1일 건보 시작 #한해 145만명에 1조원 들어갈 듯

척추 MRI 건보는 '문재인 케어의 끝판왕 격'이다. 연간 145만명에게 7900억원의 건보재정이 들어간다. 환자 법정부담금을 더하면 1조원 넘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원장은 "MRI 건보보다 훨씬 시급히 건보를 적용할 게 수두룩한데 여기에 큰돈을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원래 건보를 적용하던 비(非)퇴행성 척추질환 MRI 검사 건보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척추·척수·척추주위의 악성종양·양성종양, 척추염, 추간판염, 척수염, 척추 골절 및 탈구, 척수손상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의 선천성 척추 후만증·측만증, 신경섬유종 척추측만증, 신경근육성 척추측만증 등의 척추 변형 환자의 MRI 검사에 건보가 추가됐다.

척추 MRI 건보 적용 대상자의 상당수는 이런 비퇴행성 질환보다 퇴행성 질환자들이다. 나이 들면서 척추에 탈이 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목이나 허리 병의 통증은 환자마다, 의사마다 판단이 다르다. 다른 어떤 질병보다 건보를 적용하기 까다롭다. 이번 기준 마련에 2년 반 걸렸다. 미국은 MRI를 포함한 고가영상장비 건보 적용에 10년 걸렸다고 한다.

고심 끝에 내놓은 퇴행성 척추 건보 기준은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경우'이다. 당장 수술 또는 시술을 해야 할 상황이고, 이를 위한 진단에만 건보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즉 명백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있고 진료해보니 이상 소견이 있어서 신경학적 검사를 한 경우에만 건보가 된다.

① 뚜렷한 방사통(통증이 사방으로 퍼짐)이 있으며 근력 등급(Motor G) IV 이하 ② 진행되는 신경학적 결손 ③말총(마미)증후군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신경이 손상되면 근육반사가 잘 안 된다. 감각이 떨어지거나 너무 예민해지거나, 다리가 저리는 등의 이상 감각이 생기거나, 무릎 반사가 본인 의지랑 관계없이 생기거나, 허리가 아프다가 고관절에서 종아리로 통증이 타고 내려가며 방사통이 뚜렷하게 증가한 경우"라고 설명한다. 이 부장은 "단기간에 급격히 나빠지거나. 척추 상태가 나빠져 근력이 약화해 잘 못 걷거나 발을 질질 끌 정도여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이나 허리 병으로 통증이 있거나 팔·다리가 좀 저린 정도로는 MRI 검사 건보가 안 된다는 뜻이다.

척추(요천추) MRI검사 부담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척추(요천추) MRI검사 부담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요천추(허리뼈·엉덩이뼈) MRI 검사 수가는 상급종합병원 33만1590원, 일반종합병원 31만8840원이다(MRI 장비가 3테슬라 이상). 외래 환자 상태로 검사하면 환자 부담은 각각 약 20만원, 16만원이다. 중소병원 수가는 30만6080원, 동네의원 33만7490원이며 환자 부담은 각각 12만여원, 10만여원이다.

건보가 되기 전 상급종합병원 검사료가 약 70만원(환자 전액 부담)인 점을 고려하면 환자 부담이 70만원에서 20만원가량으로 줄어든다. 일반종합병원은 49만원에서 16만원으로 준다.

의사가 건보 적용을 결정했다고 끝이 아니다. 통증 측정 척도(VAS 스코어) 등 다양한 방법의 신경학적 검사 결과와 건보 적용 기준에 부합한다는 판단 자료를 심사평가원에 제출해 심사받아야 한다. 만약 기준에 맞지 않은데 건보를 적용했다면 검사료를 삭감한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받아내기도 쉽지 않다. 경증질환에 MRI 검사를 남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기준이 복잡하다보니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병원의 한 관계자는 "환자는 무조건 건보 적용을 요구할 테고, 기준은 까다롭고, 가운데서 우리가 힘들게 됐다. 환자에게 건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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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척추질환은 수술이나 시술 전 진단을 위한 MRI 검사 1회만 보험이 적용된다. 수술·시술 후 추적검사는 건보가 안 된다. 비퇴행성 질환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1회 이상 가능하지만, 병에 따라 횟수나 기간이 제한된다.

퇴행성 척추질환 환자가 다른 데서 찍은 MRI 검사 필름을 가져오면 그걸 활용하도록 판독료가 올렸다. 다만 판독료를 달라고 심평원에 신청하면 6개월간 재촬영할 수 없게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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