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도체·석유화학·차, 수출 먹구름 몰려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수출, 원자재수급, 대금결제 등 한국 경제에도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컨테이너 하역작업장.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수출, 원자재수급, 대금결제 등 한국 경제에도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컨테이너 하역작업장.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설치된 수출통제 대응 전담반인 ‘러시아 데스크’. 가동 시작 사흘째인 27일까지 60건이 넘는 기업 애로사항이 접수됐다. “러시아 기업과 거래하고 있는데 앞으로 수출이 불가능한 건가” “못 받은 대금이 있는데 어떻게 되는 거냐” 등 업체 문의가 쏟아졌다. 러시아 데스크 담당 이인선 전략물자관리원 지역연구팀장은 “대금 결제 문제와 수출 통제에 따른 지원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충격파가 한국 경제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국내 3대 주력 산업으로 꼽히는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도 영향권이다. 생산 공정에 차질을 빚을 위험이 커진 데다(반도체) 원자재를 수입하고(석유화학) 부품·소재를 수출(자동차)하는 일도 어려워지면서다.

당장의 급한 불을 꺼야 하는 건 반도체 업계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물량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산업부 집계 결과 네온은 수입액 23%를 우크라이나로부터, 5%를 러시아로부터 충당하고 있다. 크립톤과 제논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수입 비중이 각각 48%, 49%에 이른다.

한국 3대 수출 품목과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3대 수출 품목과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관련기사

반도체 업계는 가스 재고 비축량을 3~4배 확대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주요국 수출 통제 등 경제 제재 장기화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국내 특수가스 전문기업인 TEMC와 함께 광양제철소 산소 공장 내 공기 분리 장치를 활용해 네온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지난 1월 성공했다. 다만 이는 국내 수요의 약 16%를 충족하는 물량이라 추가 공급선 확보가 필수다. 전 세계적으로 네온·크립톤 등 희귀 가스 공급난이 번지며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이 역시 반도체 업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비상이다.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이 가장 큰 문제다. ‘유가 상승=석유화학 수익 매출 상승’은 유가가 완만하게 오를 때나 통하던 공식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오가는 급작스러운 초고유가 현상은 석유화학 산업 피해로도 번질 수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다. 한국의 지난해 원유 수입량 9억6015만 배럴 가운데 러시아산은 5375만 배럴로 비중은 5.6% 정도다. 현재 국내 석유 비축 물량도 100일분을 넘어 당장의 위기는 덜하지만, 러시아산 원유 수출입이 막히면서 중동·북미 등 대체선을 찾는 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과 이에 따른 이란산 원유 수입 재개에 업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우크라이나 위기로 인한 영향 중심에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러시아 전체 수출 품목 가운데 자동차·부품이 40.6%(수출액 기준)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철구조물(4.9%), 합성수지(4.8%) 등도 있다.  우크라이나 수출 품목에서도 승용차(21.7%) 비중이 가장 크고 아연도강판(11.0%), 화장품(8.3%), 합성수지(7.7%)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정부 대응 수위도 높아졌다. 이날 기획재정부 주재로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주재한 한훈 기재부 차관보는 “업계와의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미국의 대러 금융제재 관련 국내 기업의 거래대금 결제에 차질이 없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같은 국내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특히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몇 개월 정도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원재료로 버티겠지만, 사태가 길어져 부품 하나만 조달이 안 돼도 제품 생산이 아예 안 되는 첨단산업은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