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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앞둔 학교는 '멘붕'인데…6시간 출판기념회 연 조희연

중앙일보

입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에 사인하고 있다. 뉴시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에 사인하고 있다. 뉴시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장장 6시간에 걸친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사실상 3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출판 행사를 여는 교육감 후보자가 적지 않지만, 교육계에서는 오미크론 변이가 정점에 달한 가운데 개학을 앞두고 서울 교육 수장이 방역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출판기념회가 6시간에 걸쳐 열렸다.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행사 시작 후 10여분이 지나자 행사장 밖 계단까지 조 교육감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학생 자원봉사자 두 명이 입장객들을 안내했다.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오후 6시 기준 13만명을 넘어 역대 최다에 근접했다. 조 교육감과 출판사 정한책방 측은 사전 예약을 받아 30분 단위로 입장을 제한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는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한 입장객이 진행요원에게 “미처 사전 예약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진행요원이 되레 “무슨 예약이요?”라고 되물었다.

정치권, 교육계 발길…5만원권 여러장 넣고 책받아가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의 모습. 장윤서 기자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의 모습. 장윤서 기자

이날 출판기념회는 정치인과 지지자의 만남에 가까웠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이름, 소속과 축하말을 적은 봉투에 현금을 담아 흰 상자에 넣고 책을 받아갔다. 봉투를 넣는 상자 옆으로는 방명록과 명함을 넣는 상자도 있었다. 행사장 곳곳에 ‘정가 2만원’이라는 종이가 붙어있지만 대부분 참석자가 봉투에 오만원권을 여러 장 넣고 책 한두권을 받아갔다.

조 교육감 측은 “교육감 조희연이 아닌 개인 조희연으로서 진행하는 행사”라고 설명했지만 참석자들이 받은 홍보 문자 메시지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출판기념 저자사인회에 초대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정치권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여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구청장들이 방문해 축하 마이크를 잡았다. 조 교육감과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이들과 노조 관계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 역시 조 교육감과 사진을 찍고 “조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교육청 직원들도 조퇴하고 교육감 사인 받아가 

25일 오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장윤서 기자

25일 오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장윤서 기자

퇴근 시간인 오후 5시 무렵부터 서울시교육청 직원들도 도착했다. 실국장급 간부부터 일반 공무원들까지 행사장을 찾았다. 4시쯤 입장한 교육청 직원 A씨는 “조퇴하고 인사차 왔다”고 말했다. A씨는 “교육감님이 (출판기념회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해 오히려 섭섭했다”면서도 “북콘서트엔 관심이 없다”며 조 교육감의 사인을 받고 돌아갔다.

조 교육감은 지난 2018년 재선을 앞두고 연 출판기념회에서도 “사실상 선거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조 교육감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번 출판기념회 홍보글에서 “'조희연 출판기념회'이지만, 내용은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바꾸는 23인에 대한 출판기념회"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조 교육감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23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이날 사인회 도중 행사장 한 곳에선 책에 나온 인터뷰 대상자가 직접 출연하는 북콘서트도 열렸다. 북콘서트를 시작하자 조 교육감은 5분 남짓 인사말을 하고 출연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서둘러 사인을 하러 돌아갔다. 북적북적한 행사장 옆에서 북콘서트를 관람하는 인원은 20명 남짓이었다.

“학교는 방역에 정신없는데 교육감은 대규모 행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 포스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출판기념회 포스터

계속된 비판에도 출판기념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서다. 출판기념회에서 얻은 수익은 정치자금법상 규제를 받지 않아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고, 모금 내역이나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정당을 표방할 수 없는 교육감 후보자들은 출판기념회를 애용한다. 조 교육감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인 조영달 서울대 교수도 지난 1월 책 ‘영달이의 꿈’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당의 지원을 받는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출마자들도 선거마다 출판기념회를 열고 지지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3월 개학을 코앞에 두고 평일에 교육감이 자리를 비운 것에 교육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시·도교육청마다 서로 다른 등교 기준으로 학교는 지금 ‘멘붕’ 상태에 빠졌다”며 “교육청이 학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보건교사는 “매번 방역 지침이 바뀌어 정신이 없다. 지금 보건교사들은 방학도 없이 집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 교육감이 오전까지 업무를 보고 오후 반차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을 받는 조 교육감의 재판 결과가 이번 교육감 선거의 최대 변수다. 보수 진영 후보들은 여론조사와 토론회를 거쳐 다음 달 30일 단일화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지만 일부 후보간 갈등으로 난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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