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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 안해""외교 대화" 뒤 뒤통수…푸틴이 진짜 노리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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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외교적 해결 모색에 항상 열려있으나 국익은 타협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다음날인 24일 “우크라이나 내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러시아 지상군을 우크라이나로 진격시켰다. '외교적 해법' 하루 만에 '우크라 침공'으로 얼굴을 바꿨다.

푸틴 대통령이 강온양면,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로 서방의 허를 찌르고 있다. 때론 침공 가능성을 일축하는 발언을 내놓는 식으로 공격할 듯 안 할 듯 양면적 태도를 보여줘 외교적 타협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서방을 헛갈리게 만드는 전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가 특별 군사작전을 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신화통신=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가 특별 군사작전을 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신화통신=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언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계획은 없다”며 제한적 침공 가능성을 거론했다. 하지만 그간의 발언으로 볼 때 어디까지가 푸틴 대통령의 본심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설에 "미국이 위협"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거리에 떨어진 포탄 잔해.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거리에 떨어진 포탄 잔해.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설은 지난해 11월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당시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10만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으며 이듬해 1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에 강력 반발하며 “미국의 극초음속 무기 능력이 (도리어)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12월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푸틴 대통령은 “정세 악화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며 정작 러시아는 나토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이미 배치된 10만 병력을 비롯해 탱크와 대포까지 증강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최대 규모의 병력이 집결했다는 분석이었다.

정상 외교 속 우크라 국경 포위

푸틴 대통령은 이런 와중에 미국, 독일, 프랑스와의 정상 외교는 계속 이어갔다.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지만, 외교적 해결 가능성의 여지를 항상 남겨뒀다. 미국과 러시아는 1월에만 수차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했다. 러시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의 회담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이유가 없다”며 “어떤 종류의 확대 시나리오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뒤로는 우크라이나 3면을 포병 및 기갑부대 등으로 포위했다.

병력 뺀다더니 오히려 증원 

2월 들어 베이징 겨울 올림픽 기간과 함께 전운은 더욱 고조됐지만, 푸틴은 마지막까지 서방 세계를 헛갈리게 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 후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열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강 대 강의 치킨게임 속 막판 타협의 기대감을 품게 했다. 이어 15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접경지의 훈련 병력을 일부 복귀시킨다고 알렸다. 이는 푸틴의 '충돌 회피' 신호로 간주됐다.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군 병력은 오히려 증원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1일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적 타협의 기대감이 올라가는 시점에선 전격적으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우크라이나명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회담과 침공 명분 쌓기라는 화전양면술이었다.

러시아는 침공 직전까지 회담의 문을 열어놓는 제스처를 취했다. 24일로 예정된 미러 외무장관 회담을 앞두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향해 “회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더니 24일 새벽 푸틴 대통령의 공격 발표가 나왔다.

백악관 ‘김빼기’에 허 찌른 푸틴 

그간 백악관은 ‘16일 침공 가능성’ 등으로 푸틴의 예상 행보를 미리 전세계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김 빼기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푸틴은 이에 맞서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을 열어둔 뒤 병력 증원, 친러 반군 정부 승인,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단계를 전격적으로 밟으며 결국 서방의 허를 찔렀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장 장 모네 석좌 교수는 “러시아는 지금도 미국이 판을 키웠기 때문에 자신들이 여기(전면전)까지 온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애초부터 전면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나토 지도 25년 전으로 물리려 해”

이런 전략을 펴고 있는 푸틴의 눈은 본질적으로 우크라이나 너머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푸틴 전기를 쓴 전직 행정부 러시아 정책 수석 고문인 피오나 힐은 이달 초 "러시아가 강공 태세로 나간다면, 푸틴은 나토·유럽과 새로운 안보 협정을 맺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러시아 국방 분석가 마이클 코프만도 “당장 우크라이나가 위기에 처했지만, 푸틴의 마음에는 더 원대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유럽 안보 질서의 수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우선 분쟁을 일으켜 나토의 지도를 25년 전 뒤로 물리려는 게 푸틴의 가시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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