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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감사의 마음” 싹쓸이 대신 보태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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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21면

보수의 뿌리

보수의 뿌리

보수의 뿌리
프랑크 메이어 외 지음
이재학 옮김
돌밭

대선이 불과 몇 주 앞인 지금,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새 양측은 정체성에 큰 타격을 가한 중대한 사건을 번갈아 겪었다. 박근혜 사태와 조국 사태란 위기를 겪은 뒤 각 진영은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했을까.

한국사회의 선택과 각 세력의 성찰은 훗날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지금 시점에선 60년 전 미국의 보수주의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1964년 미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프랑크 메이어가 엮은 이 책은 우파 내부의 철학적 논쟁을 담고 있다. 당시 미국은 냉전 속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도약했지만, 국내적으로는 민권운동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또한 1930년대 뉴딜 정책 이후 정부의 비대화는 전통적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위기로 다가왔다.

이 책의 기획은 영미 보수 사상의 두 뿌리인 전통주의, 자유지상주의를 화해시켜 공동의 적에 맞서게 하자는 데 있었다. 보수에게 공동의 적이란, 역사·경험을 무시하고 들뜬 이상만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짓 예언’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집단의 요구를 강제하는 사회주의적 요구가 저자들에게 ‘공동의 적’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의 헌법은 국가라는 탈을 뒤집어쓴 인간들을 심오하게 불신하는 보수주의의 실천이 자유라는 목적에 훌륭하게 봉사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했다”는 미국적 보수주의 신념이 나온다.

‘국가라는 탈을 뒤집어쓴 인간’들에 대한 불신으로 ‘복지국가’도 부정하는 견해는 지금 시점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미국 건국이 현실주의·이상주의라는 모순된 두 기둥에 토대를 뒀기 때문에 성공적 혁명이었다는 이들의 진단은 보수주의자의 중요한 역할이 ‘균형 감각’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전통의 범위 안에서 작동해 온 이성의 역사”를 신뢰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나쁘고 망가진 그 무엇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해 그 모두를 파괴해 버리려 애쓰는” 이들을 불신한다.

이 책에서 인용하는 “보수주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좋고 효과가 있는 그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그 위에 무언가를 더 보태려 노력한다”는 소박한 신앙고백은 보수 사상의 가장 대중적인 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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