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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수천만원 운동화도 판다…'취저' Z세대가 절반, 이 장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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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과거 티몬에서 스토어그룹장을 거쳐 대표이사를 지냈다. [사진 번개장터]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과거 티몬에서 스토어그룹장을 거쳐 대표이사를 지냈다. [사진 번개장터]

흔히 중고라고 하면 남의 손을 탄 후줄근한 제품을 떠올린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저렴한 맛에 이용하는 차선책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중고거래 시장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신제품뿐 아니라 명품까지 쏟아지고 있다. 막상 손이 잘 안 가는 옷을 재빨리 처분해 다른 물건을 사겠다는 실용주의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

이에 대해 이재후(42) 번개장터 대표는 지난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층은 물건을 살 때마다 신제품과 중고 거래 시세를 비교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동차 구매 시 비슷한 가격이면 국산 신차와 수입 중고차 중에서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처럼 앞으로 거의 모든 쇼핑 품목이 중고제품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번개장터는 2011년 출시된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이 회사가 중고나라·당근마켓과 차별화되는 건 이용자의 54%가 1020세대라는 점이다. 중고거래를 ‘구차한 소비’가 아니라 ‘취향을 잇는 거래’로 인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서울 여의도동 더현대서울과 역삼동 센터필드에 문을 연 운동화 리셀(재판매) 매장과 명품 편집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운동화와 명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20년 번개장터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된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전문경영인이다. 번개장터 부임 직전 티몬에서 사업전략실장, 스토어그룹장 등을 거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티몬 이전에는 관심 기반 소셜커머스 빙글에서 성장총괄이사직을 담당했으며, 전략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다수의 유통 및 IT(정보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오픈한 번개장터의 한정판 운동화 편집숍 '브그즈트 랩(BGZT Lab)' [사진 번개장터]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오픈한 번개장터의 한정판 운동화 편집숍 '브그즈트 랩(BGZT Lab)' [사진 번개장터]

중고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중고차를 제외하고 20조원 규모다. 매년 20~30%씩 커지고 있다. 우리는 중고거래를 버티컬 마켓(패션·식품 등 특정 제품군을 다루는 시장)이 아니라고 본다. 신상품을 파는 기존 시장과 다른 애프터 마켓이 태동하는 단계다. 이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는 다른 C2C(소비자 간 거래) 커머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번개장터의 중고거래는 과거의 중고거래와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중고거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리를 위한 시장이다. 육아용품처럼 더는 쓸모 없지만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대신 누구든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내놓는 방식이다. 이 시장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두 번째는 취향 거래 시장이다. 정말 갖고 싶은 상품을 합리적으로 거래하는 수단이다. 정가보다 저렴하게 사거나, 더 나아가 되파는 것을 염두에 둔 채 무리해서 지를 수 있는 수단이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역삼동 센터필드에 문을 연 '브그즈트 컬렉션(BGZT Collection by 번개장터)'. 이소아 기자

역삼동 센터필드에 문을 연 '브그즈트 컬렉션(BGZT Collection by 번개장터)'. 이소아 기자

‘취향 소비’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객관적인 가치’를 추구해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주관적인 가치’가 중요해질 것이다. 7~8년 전만해도 ‘취향’ 또는 ‘관심사’라는 단어를 대부분 생소하게 여겼다. ‘한국인의 관심사는 결국 모두의 관심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가 관심이 있는 것보다는 남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 훨씬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콘텐트도 실시간 검색어 랭킹 상위권에 올라야 관심을 가졌다. 좋은 대학, 직장, 승진, 내 집 마련 등을 이뤄야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젊은 층은 보다 실존적인 고민을 한다.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고찰하며 삶의 풍요로움을 찾고자 한다. 누군가에는 패션, 어떤 이에게는 맛집 탐방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보장하는 취향이 될 수 있다.”
최근 백화점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뛰어가는 현상)’을 보면 취향 소비에 거품이 꼈다는 의심도 든다.  
“두 가지가 섞여 있다. 언제나 어떤 현상에는 본질이 있고, 주변을 따라오는 부류가 있다. 본질은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이고, 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트렌드다. 여기에 오롯이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드는 부류가 있는데, 이들도 알고 보면 해당 브랜드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투자 목적으로 산 운동화를 막상 신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넓게 보면 오픈런에 관련된 모두가 제품에 대한 수요를 키우고 있다고 판단된다.“
소비자의 취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관심 있는 브랜드를 어떻게 즐기고 싶을까 고민한다. 예컨대 더현대서울 매장의 경우 박물관 같은 느낌을 최대한 배제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운동화를 유리관 속에 모셔두지 않고 누구나 와서 만져보고, 심지어 신어볼 수 있게끔 했다. 실제로 경험해보는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센터필드 매장의 경우 백화점 우수회원(VIP) 응대에 준하는 서비스를 통해 명품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장소라는 신뢰감을 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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