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부처마다 한 건 내놓기 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얄팍한 공명심 비판 고조>
대통령의「범죄와의 전쟁」선포이후 정찰의 실적위주 무더기연행 등 인권침해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서울 중랑 경찰서가 강도피의자 3명을 붙잡은 뒤 이들로부터 압수하지도 않은 공기총과 낫·칼등을 강도범행 시 사용한 흉기들이라며 사진까지 찍어 보도자료를 돌린 사실이 밝혀지자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한 건 터뜨려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얄팍한 공명심」에 대한 자체비판이 고조.
서울시경의 한 간부는『경찰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지시가 잇따르고 있고 일선 경찰들은 성과도 없이 계속되는 일제 검문검색과 각종 캠페인행사에 연일 동원돼 사기가 최악』이라며『무리한 수사독촉에 따른 인권침해사례도 늘고 있어 범죄꾼에 대한 전쟁인지 국민과의 전쟁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는 것을 윗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고 한숨.

<엇비슷한 대책만 남발>
이와 관련 법무부와 검찰도 범죄척결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으나 가시적인「성과」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 너무 입법측면에만 매달리는 듯한 인상.
13일「전쟁선언」후 15일 흉악범처벌내용의 입법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대검도 16일 강력 부장 회의를 소집, 대책을 내놓았으나 전날 법무부가 마련한 것과 다른 게 별로 없어 일부에서는 소리만 요란한 것 아니냐고 지적.
특히 대검의 방안 중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누범 자에게 최고형만을 선고토록 한 내용은 사법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하루만에 이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어『스타일만 구겼다』는 평.

<"실무책임자 모르는 일">
노동부는 전노협 지도부에 대한 감시강화 등 초강경의 노사관계질서확립방안을 발표했다가『노동부가 보안사처럼 사찰을 한다』는 여론이 일자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
노동부는 이 발표문에서 재야노동단체인 전노협의 후원회모금 등 재정확보수단을 봉쇄하고 지도부 피선예상 자 등 주요인물에 대한 동향파악을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같은 방침이 보도되자 노동계에서는『노동부가 사찰기관이냐』고 비난이 비등.
노동부 관계자는『실무책임자도 모르게 이같은 내용이 발표됐다』면서『노동계 인사에 대한 동향파악은 사찰차원이 아니라 행정기능상의 평상업무일 뿐』이라고 극구 해명.

<"인권침해 우려"에 함구>
치안본부는「범죄와의 전쟁」후속조치로 마련한 경찰관 직무집행 법 개정안에 대해『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공식반응 없이「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
치안본부 일부 관계자들은 한술 더 떠『이번에 삭제하기로 한 경찰관의 직권남용처벌조항과 임의동행 거부권고지 의무조항 등은 88년12월 여소야대 국면이 만들어 낸 법안으로 그동안 경찰활동에 크게 지장을 주어 온 불필요한 조항』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해 이 문제를 보는 경찰의 시각을 반영.

<수사대상 찾기에 골머리>
10·13 대통령특별선언 이후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후속조치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일선 검찰에서는「범죄와의 전쟁」에 걸 맞는 수사대상을 찾느라 골머리.
지난5월 발족이후 서방 파 김태촌 씨 등 조직폭력사건과 국제코카인밀수사건, 해외원정도박 단 등 대형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강력부는『특별선언에 어울리는 화끈한 수사결과를 내 놓으라』는 수뇌부의 독려에 따라 연일 검사회의를 소집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그러나 다그치고 회의를 한다고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한 수사검사는『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쫓기는(?)심정을 토로.

<"정기단속" 지적에 머 쓱>
환경처는「범죄와의 전쟁」선언에 맞춰『16일부터 연말까지 대대적인 공해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하는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가『분기마다 하고 있는 정례적인 단속이 아니냐』는 지적에 머 쓱.
환경처는 단속지침에서도「야간, 우천 시, 토·일요일 등 취약시간대 단속강화」와 같은, 뜻은 좋으나 인력동원의 어려움으로 실효성에 문제가 있는 내용을 포함시켜「상부 생색용」발표가 아니냐는 지적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물론 계속 하고 있는 단속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무게를 실어 강력한 단속을 실시, 공해문제에 있어서도 법질서를 확립해 보겠다는 뜻』이라고 궁색한 설명.

<국방부 일체 언급회피>
보안사사건에 대한 자체해명과 신·구 장관의「뼈 있는」발언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던 국방부는 이종구 장관 취임이후 이 문제에 관해 일체 언급을 피하는 등 철저한 함구자세.
국방부는 당초 이번 주초로 예정돼 있던 보안사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 기구개선 안 등의 발표를 미루면서도 지연이유와 추후일정 등에 대해서조차 무조건「노코멘트」. 이에 일부에서는『국방부가 시간 끌기로 상기된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작전이 아니냐』고 분석.
이에 대해 한 간부는『사안이 사안인 만큼 입 조심하는 것일 뿐』이라며『국방부로서는 비교적 입장이 편한(?)장관이 왔으니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힘있는 장관」의 역량을 기대.

<한성대 감사사실 쉬쉬>
문교부는 최근 전국 사립대학에 대학입시부정을 철저히 예방할 것을 촉구하는 지침을 내려보내면서도 정작 물의를 빚은 한성대 감사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구설수.
문교부는 촉구공문에서 한성대 감사결과 드러난 사례는 예시하지 않은 채『언론의 한성대사건 보도로 전체대학의 권위가 실추되고 온 국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만 지적해 보기에 따라서는 비리의 근절보다 비리사실의 노출방지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한 자세.
문교부의 지시를 받아 본 한 대학관계자는『감사결과 금품수수·부정입학을 적발하고도 40여일 동안 쉬쉬하며 숨겨 오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마지못해 감사결과를 발표했던 문교부가 끝까지 한성대에 대한 감사사실을 은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아냥.

<가짜 한약 중국자극 걱정>
중국산 한약에 대한 성분검사결과 우황청심환 등 대부분이 중금속을 함유한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 낸 보사부는 이번 조사결과발표가 중국당국의 심사를 불편하게 해 앞으로의 한중관계개선에 어떤 영향을 주지나 않을지 고심했다는 후문.
보사부는 문제가 된 한약이 정식수입품이 아닌 휴대품이고,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중국산 한약 선호경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실상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
그러나 이같은 보사부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눈치 볼 것을 보아야지 그토록 줏대가 없으니까 국제적으로 한국이 봉 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며『농수산물개방 등 변혁을 앞두고 보사 행정이 국민건강이나 제대로 지켜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